“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네 복음서 중에 <행복하여라>가 가장 많이 나오는 복음이 루카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루카복음을 일컬어 과히 ‘행복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이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마태오복음에 여러 번 나오지만 주로 행복선언에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 모두 행복한 종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마태오복음이 충실히 일하는 종의 행복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데 비해
루카복음은 충실히 일하는 종의 행복에 대해서도 애기하지만(내일 복음)
또 다른 차원에서의 행복한 종에 대한 얘기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오늘 복음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종의 행복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종의 행복입니다.
의무로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종과
사랑으로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종,
의무를 다해 칭찬받는 행복한 종과
사랑에 깨어 있어 사랑받는 행복한 종의 비교이고 차이입니다.
루카복음은 마태오복음과 달리 주인과 종의 관계를
주종관계로만 보지 않고 인격적 사랑의 관계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루카복음의 주인은 의무를 다하는 종이기를 요구하고,
그럴 때 칭찬하고 그렇지 않을 때 벌하는 주인이 아니라
종을 사랑하고, 종을 받들어 섬기고, 종을 주인으로 격상시키는 주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 깨어 기다리고 있던 종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오히려 시중을 드는 주인은 주인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고 늦게 돌아옵니다.
엄마는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며 서둘러 집에 돌아옵니다.
몹시 피곤하지만 씻지도 못하고 서둘러 음식을 차려 내오고
다 먹을 때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고 씻어 재운 다음에야
자기도 끼니를 때우고 몸을 씻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우리가 깨어있기만 하면
우리는 종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이고 심지어 주인입니다.
주님이 섬기는 주인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을 두려움의 주님으로만 생각지 말고
사랑의 주님으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의무를 다하는 종과 당신 사랑을 갈망하는 종 중 주님은 누구를 더 예뻐하실까요?
그리고 싫은데 의무로, 다시 말해서 억지로 깨어 기다리는 종보다는
사랑으로 깨어 기다리는 종을 주님은 더 예뻐하지 않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