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내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삶과 활동의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때 내가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할 때 많이 생각을 하고 결정하고,
계획을 잘 짜 일에 착수하는 것을 현명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빼놓고 일을 할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옳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내가 하려는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렇게 하면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
누구에게 원한을 사지는 않을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그런 다음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혀 가는 것은 나의 생각과 계획과는 무관합니다.
그 일의 Initiative가 완전히 성령께 있는 것입니다.
주도권(Leadership)을 성령께 완전히 드리기 위해서는
그 생각의 발상(Initiative)부터 성령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잘 헤아려
그것이 하느님 뜻에 맞을 때 시작하는 것도 매우 신앙적이고
하느님 뜻에 잘 순종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신중히 헤아립니다.
그러나 더 완벽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생각과 계획부터 성령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성령 쇄신 운동을 하는 제가 아는 신부님 한 분은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제의가 들어오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많이 생각지 않고,
그분의 표현대로라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Yes를 한다고 합니다.
그분 표현에는 과장도 있고 그대로 하면 위험도 있지만
성령께 Initiative를 드리려는 자세는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에 사로잡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 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제 생각, 제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친다고 합니다.
이는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 생각도 존중하라는 뜻인데
성령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내 생각이건 다른 사람 생각이건
다 성령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없는 것이고
자기의 힘을 완전히 빼는 것입니다.
하여 노장 사상에서 얘기하는 무위無爲의 위爲가 되게 하는 겁니다.
내가 하지 않아야 성령께서 하십니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의 행위 방식입니다.
그래서 감히, 아니 무엄하게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주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무엇을 하였다면 아무리 신중히 생각했어도
하느님의 모든 뜻을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무엇을 하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고
어떻게 하든 그것은 성령의 능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삶과 활동의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때 내가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할 때 많이 생각을 하고 결정하고,
계획을 잘 짜 일에 착수하는 것을 현명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빼놓고 일을 할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옳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내가 하려는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렇게 하면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
누구에게 원한을 사지는 않을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그런 다음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혀 가는 것은 나의 생각과 계획과는 무관합니다.
그 일의 Initiative가 완전히 성령께 있는 것입니다.
주도권(Leadership)을 성령께 완전히 드리기 위해서는
그 생각의 발상(Initiative)부터 성령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잘 헤아려
그것이 하느님 뜻에 맞을 때 시작하는 것도 매우 신앙적이고
하느님 뜻에 잘 순종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신중히 헤아립니다.
그러나 더 완벽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생각과 계획부터 성령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성령 쇄신 운동을 하는 제가 아는 신부님 한 분은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제의가 들어오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많이 생각지 않고,
그분의 표현대로라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Yes를 한다고 합니다.
그분 표현에는 과장도 있고 그대로 하면 위험도 있지만
성령께 Initiative를 드리려는 자세는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에 사로잡혀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 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제 생각, 제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친다고 합니다.
이는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 생각도 존중하라는 뜻인데
성령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내 생각이건 다른 사람 생각이건
다 성령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없는 것이고
자기의 힘을 완전히 빼는 것입니다.
하여 노장 사상에서 얘기하는 무위無爲의 위爲가 되게 하는 겁니다.
내가 하지 않아야 성령께서 하십니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의 행위 방식입니다.
그래서 감히, 아니 무엄하게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주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무엇을 하였다면 아무리 신중히 생각했어도
하느님의 모든 뜻을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무엇을 하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고
어떻게 하든 그것은 성령의 능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네 저도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피정 집입니다.
주교님 두 분과 사제 4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정에 전념하느라
그리고 이곳에 내려와서 제가 준비한 강의를 대폭 수정하였기 대문입니다.
이 또한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같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