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복음의 그 어떤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사람이지만 복음사가들이 이름을 얘기해주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저 어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고,
그래서 어쩌면 그 이름이 길이 남아야 할 사람입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밖에 없다면
부족한 것이 수두룩한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고,
훌륭하다고 하는 성인들과 견주어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부모 공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 관련의 모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그는 살인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 않았고,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 증언이나 횡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남을 해치는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쉬운 일입니까?
아니, 가능하기나 한 일입니까?
이렇게 인간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을 이 사람이 잘 하였으니
주님께서도 그 사람을 사랑스럽게 보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구약의 십계명의 맹점을 꿰뚫어보신 거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주 그리 말씀하셨지요.
구약에서 이렇게 얘기했는데, 나는 이렇게 얘기하노라.
구약의 대인對人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외에는
다 이웃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나쁜 짓 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사랑이 아니고,
심지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관심하고, 무관계하면 남에게 전혀 폐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턱없습니다.
그러니 남의 재물을 도둑질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고
나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사랑입니다.
그러니 나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없다면
부족한 그 한 가지가 너무도 큰 결점,
곧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결점이 얼마나 큰지
나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음으로
주님을 따를 수 없게 되고,
하늘나라의 보물도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저를 반성해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재물 정도야 다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진정 재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가지기 위한 재물이 아니라 주기 위한 재물입니다.
그런데 진정 내가 벌벌 떨면서까지 내 옷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쫄쫄 굶으면서까지 내 먹을 것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입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줄 수 있고,
내가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줄 수 있지만
굶고 추위에 떨면서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저입니다.
앞으로 나의 사랑은?
더 나아질는지,
지금 이대로일지,
더 나빠질지......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복음의 그 어떤 사람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사람이지만 복음사가들이 이름을 얘기해주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저 어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고,
그래서 어쩌면 그 이름이 길이 남아야 할 사람입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밖에 없다면
부족한 것이 수두룩한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고,
훌륭하다고 하는 성인들과 견주어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부모 공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 관련의 모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그는 살인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 않았고,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 증언이나 횡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남을 해치는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쉬운 일입니까?
아니, 가능하기나 한 일입니까?
이렇게 인간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을 이 사람이 잘 하였으니
주님께서도 그 사람을 사랑스럽게 보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구약의 십계명의 맹점을 꿰뚫어보신 거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주 그리 말씀하셨지요.
구약에서 이렇게 얘기했는데, 나는 이렇게 얘기하노라.
구약의 대인對人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외에는
다 이웃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나쁜 짓 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사랑이 아니고,
심지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관심하고, 무관계하면 남에게 전혀 폐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턱없습니다.
그러니 남의 재물을 도둑질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고
나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사랑입니다.
그러니 나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없다면
부족한 그 한 가지가 너무도 큰 결점,
곧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결점이 얼마나 큰지
나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음으로
주님을 따를 수 없게 되고,
하늘나라의 보물도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저를 반성해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재물 정도야 다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진정 재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가지기 위한 재물이 아니라 주기 위한 재물입니다.
그런데 진정 내가 벌벌 떨면서까지 내 옷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쫄쫄 굶으면서까지 내 먹을 것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입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줄 수 있고,
내가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줄 수 있지만
굶고 추위에 떨면서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저입니다.
앞으로 나의 사랑은?
더 나아질는지,
지금 이대로일지,
더 나빠질지......
너의 아픔을 알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