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 치유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병치유의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어떤 병이든지 예수님은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능력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아무나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아니, 그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그런 능력을 가지셨을까?
아니, 그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이신가?
신약성서 시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은 신이시다....
그런데 나병이 치유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치유가 되더라도 인간은 생로병사의 대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병이 듭니다.
그럼 치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병이 든다는 병듦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병은 왜 들까요?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병은 왜 우리 곁에 올까요?
병이 든다는 것은 운명이면서도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일종의 교육입니다.
병은 사람을 통제하는 하느님의 교육학이십니다.
어떤 도인이 말하길,
병은 인간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시다.
병은 인간을 새롭게 만들려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이시다.
병은 인간을 개조하려는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의 소치이시다.
아니, 병이 든다는 것에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병이 든다는 것은
우리를 회개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하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이것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이것을 깨칠 수만 있다면....
성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치유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분은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회개의 과정을 밟을 때
생각과 정신이 모두 바뀌어
나병환자를 보는 순간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랐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나병환자를 보는 순간 복음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나변환자를 보는 순간 십자가에 일그러진 예수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회개를 하게 되면 이렇게 영육이 바뀌나 봅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나병환자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습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만의 비밀이겠지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껴안을 때
가슴 속에서 깊은 전율감을 맛보았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늘의 기운이 휘돌았습니다.
그가 나병환자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그 환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음을 보았습니다.
성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을 때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는 역겨웠던 그것이
오히려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와의 만남 이후에 한 가지 결심하였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해야겠구나.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병환자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라,
그와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얼마나 눈물겨운 일입니까?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그 환자는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는 그 순간 병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치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병이 왜 드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생로병사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의 참 의미를 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인생은 한 순간입니다.
병이 들어도 놀라지 마십시다.
병이 든다는 것은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라는 것을 확 깨치고 놀라십시다.
병이 든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확 깨치고 놀라십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는가....?
하느님께서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는구나...
이렇게 외칩시다.
아마 미친 사람으로 오인받겠지요.
도대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 경지에 도달하겠습니까?
그걸 깨친 사람은 참으로 미친 사람이며,
미쳐야 참으로 거기에 미친다는 것을 알아차립시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병치유의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어떤 병이든지 예수님은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능력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아무나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아니, 그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그런 능력을 가지셨을까?
아니, 그분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이신가?
신약성서 시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은 신이시다....
그런데 나병이 치유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치유가 되더라도 인간은 생로병사의 대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또 병이 듭니다.
그럼 치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병이 든다는 병듦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병은 왜 들까요?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병은 왜 우리 곁에 올까요?
병이 든다는 것은 운명이면서도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일종의 교육입니다.
병은 사람을 통제하는 하느님의 교육학이십니다.
어떤 도인이 말하길,
병은 인간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시다.
병은 인간을 새롭게 만들려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이시다.
병은 인간을 개조하려는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의 소치이시다.
아니, 병이 든다는 것에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병이 든다는 것은
우리를 회개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하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이것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이것을 깨칠 수만 있다면....
성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치유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분은 나병환자들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회개의 과정을 밟을 때
생각과 정신이 모두 바뀌어
나병환자를 보는 순간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랐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나병환자를 보는 순간 복음서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나변환자를 보는 순간 십자가에 일그러진 예수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회개를 하게 되면 이렇게 영육이 바뀌나 봅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나병환자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습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그만의 비밀이겠지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껴안을 때
가슴 속에서 깊은 전율감을 맛보았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늘의 기운이 휘돌았습니다.
그가 나병환자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그 환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음을 보았습니다.
성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을 때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는 역겨웠던 그것이
오히려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와의 만남 이후에 한 가지 결심하였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해야겠구나.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병환자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라,
그와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얼마나 눈물겨운 일입니까?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그 환자는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는 그 순간 병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치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병이 왜 드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생로병사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의 참 의미를 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인생은 한 순간입니다.
병이 들어도 놀라지 마십시다.
병이 든다는 것은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라는 것을 확 깨치고 놀라십시다.
병이 든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확 깨치고 놀라십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는가....?
하느님께서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는구나...
이렇게 외칩시다.
아마 미친 사람으로 오인받겠지요.
도대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 경지에 도달하겠습니까?
그걸 깨친 사람은 참으로 미친 사람이며,
미쳐야 참으로 거기에 미친다는 것을 알아차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