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열매를 기대하셨는데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게
저주를 퍼부으시는 오늘 복음은 아주 문제가 많은 복음입니다.
특히 마르코복음은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주님께서 정말 이러하셨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마태오복음에는 없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마르코복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제 철이 아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인데 그 무화과나무에게
주님께서는 정말 자기 기대에 어긋난다고 저주를 퍼부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주님은 완전히 깡패와 다를 바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주하신 대로 정말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었다고 얘기하는 제자에게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믿으면
나무가 뽑혀 바다에 빠지라고 해도 그리 될 거라 하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유의하고 주님의 선과 사랑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는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풍이 불게도 하시고 지진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시고 선하신 하느님이라고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선에 하느님의 선을 가두면 아니 될 것입니다.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선과 사랑은 선과 사랑이 아니라 하고
상처 난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는 어머니의 선과 사랑만
선이요 사랑이라고 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에 녹조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악이라고 보이는 하느님의 행위 안에 숨겨진 선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열매를 기대하셨는데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게
저주를 퍼부으시는 오늘 복음은 아주 문제가 많은 복음입니다.
특히 마르코복음은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주님께서 정말 이러하셨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마태오복음에는 없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마르코복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제 철이 아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인데 그 무화과나무에게
주님께서는 정말 자기 기대에 어긋난다고 저주를 퍼부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주님은 완전히 깡패와 다를 바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주하신 대로 정말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었다고 얘기하는 제자에게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믿으면
나무가 뽑혀 바다에 빠지라고 해도 그리 될 거라 하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유의하고 주님의 선과 사랑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는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풍이 불게도 하시고 지진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시고 선하신 하느님이라고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선에 하느님의 선을 가두면 아니 될 것입니다.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선과 사랑은 선과 사랑이 아니라 하고
상처 난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는 어머니의 선과 사랑만
선이요 사랑이라고 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에 녹조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악이라고 보이는 하느님의 행위 안에 숨겨진 선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검색을 했습니다. 오늘 이 복음을 썼는데 말씀하신 대로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강론을 읽고서도 완전하게는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읽어봅니다.
우리는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는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태풍이 불게도 하시고 지진도 일으키십니다.
(여기서는 자연현상부분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비유로 내 삶에 그러한다면...)
그러므로 사랑이시고 선하신 하느님이라고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선에 하느님의 선을 가두면 아니 될 것입니다.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선과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하고
상처 난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는 어머니의 선과 사랑만
선이요 사랑이라고 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악이라고 보이는 하느님의 행위 안에 숨겨진 선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