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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이번 성탄 강론을 무슨 주제로 할까 생각다가

<일으키기도 하시고 쓰러트리기도 하시는 주님>으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님을 마치 자기 마음에 들면 돌봐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치는 조폭 두목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이 그런 분일 리가 없다고 믿지요.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쓰러트리시고,

또 어떤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것일까요?

 

성모 마리아의 찬가에 이것이 잘 나와 있습니다.

당신을 두리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교만한 이들은 흩으셨으며,

권세 있는 자들은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들은 끌어올리셨으며,

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은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리에서 내치시겠다는 권세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고,

빈손으로 내치시겠다는 부유한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권세 있고 부유한 자들은 무조건 내치시겠다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을 자리에서 내치면 안 되고,

이순신 장군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면 안 됩니다.

권세를 백성을 위해서 쓰고 나라를 지키는데 쓰는데

그분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경주 최 부자 집처럼

재산을 같이 나누는 부자가 망하게 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는 부자,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며 세도를 부리는 권세가를 내치시고,

반대로 이들에 의해 가진 것과 권리를 빼앗기고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지 2천 년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아직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남을 괴롭히는 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우리가 지금 이곳으로 모시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예수님은 마리아를 통해 오셨지만

<지금, 이곳>의 예수님은 우리가 모셔와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처럼 <지금, 이곳>에서 예수님을 낳으라고.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 우리는 어머니들입니다.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

 

이 말씀을 저는 오늘은 이렇게 풀이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우리가 지닐 때 우리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우리가 실천할 때 우리는 주님을 낳게 된다고.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꼭 <사랑과 정의>여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에 정의가 없어서는 아니 되고,

정의에 사랑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같이 있고,

힘 있는 사람과 힘이 없어 가련한 사람이 늘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지금 이곳에서 낳기 위해서는 둘 다 사랑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우선 선택할 지라도 부자를 미워해서는 아니 됩니다.

힘없는 사람을 두둔할지라도 힘 있는 사람을 증오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불의한 부자와 불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정의로운 사랑을 하고,

불의에 의해 희생당하고 억눌린 사람에게는 위로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지도자들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내놓고 불의를 저지르고,

그에 대한 정의로운 외침과 예언은 힘으로 틀어막으려 하며,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억지로 밀어붙입니다.

 

이때 우리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그들의 불의를 지적하는 것이 사랑이고,

그들이 불의한 삶을 그만 두고 회개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본당 신부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목자에게서는 양 냄새가 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몸에서 향수 냄새, 고기 냄새만 나서야 되겠습니까?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자기만 살려고 교회 재산을 몰래 빼돌리면 되겠습니까?

섬김을 받기 위해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고 스승은 말씀하셨는데

그 제자인 사제가 신자들 위해 군림하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럴 때 여러분은 신부님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본당 신부님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지금 우리 대통령과 지도자들에게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바로

주님의 어머니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주님을 낳아줘야 하고,

우리가 바로 주님이 되어 억눌리고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줘야 합니다.

 

왜냐면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신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는 다 신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가 신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심으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적인 사랑과 정의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이데 대해서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느님께서 신들의 모임에서 일어나시어 그 신들 가운데서 심판하신다.

“너희는 언제까지 불의하게 심판하며 악인들의 편을 들려느냐?

약한 이와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불쌍한 이와 가련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

약한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에서 구해 내어라.”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82)

 

그리고 주님은 마태오복음 25장에서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든 이를 돌보아 주고, 감옥에 갇힌 이를 찾아주면

그것이 곧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목동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우리 목동에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더니

시급히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이 20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기를 쌀과 연탄은 웬만큼 들어왔는데

내의와 이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들인 여러분,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신들이 되신 여러분,

주님께서 헐벗은 아기 예수로 우리에게 오신 이 성탄에

주변의 헐벗은 분들을 주님처럼 섬기는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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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분이 돕기에 참여하시겠다고 하시며 통장 번호를 물으셔서, 아예 통장번호를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저의 이름으로는 통장이 없기에 같이 사는 형제 이름의 통장 번호입니다. 예금주: 김상욱, 농협, 356-0790-0801-23
  • 홈페이지 김레오나르도김찬선 2013.12.25 07:00:24
    주님의 오심을 여러분과 함께 같이 기뻐하며, 여러분께도 주님의 축복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강론은 어제 본당 미사 때 한 강론입니다. 이 점을 참고해주시고,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이웃 돕기에 참여하시길 원하시면 제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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