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니
“포도밭 밖으로”라는 말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사랑 밖으로,
내 관심 밖으로,
내 마음 밖으로 등의 의미로 바뀌어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말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밭농사를 조금 지었지요.
학교 갔다가 오면 수시로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뽑고 돌아서면 또 풀이 나온다는 말처럼
한 여름이 되면 잡초도 아주 왕성하게 자랍니다.
아니 잡초의 생명력이 오히려 더 왕성합니다.
아무튼 원하는 작물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내어 밭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마 프란치스코를 알고 나서부터일 겁니다.
잡초라는 말을 쓰기가 미안해졌습니다.
어떤 풀이 잡초입니까?
내가 잡초라고 하는 풀들도 다 생명이고 이름이 있는데.
사실 잡초는 없고 내가 잡초라고 부를 뿐입니다.
나의 필요가 기준이 되고, 필요가 없으면 잡초가 된다는 것은
잡초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불성설이고 억울한 일입니다.
쓰레기도 그렇습니다.
돌도 그렇습니다.
필요 없다고 버리기에 쓰레기이지 왜 쓰레기이고,
요긴하게 쓰지 않으니 걸림돌이지 그 돌이 왜 걸림돌입니까?
오늘 비유의 주인은 소작인들이 자기 아들은 존중할 거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대는 깨어졌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중한 것은 자기 소유물로 삼고 싶은 재물이었지,
아들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람이 꽃보다 소중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재물보다 소중하지 않다니.
나도 소작인.
내 마음 밭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재물일까, 사람일까?
미움일까, 사랑일까?
욕심일까, 주님일까?
주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을 당신 건물의 귀한 돌로 쓰시는데,
나는 그들을 걸림돌쯤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주님마저도 귀찮은 것으로 여겨 내 마음 밭에서 골라내지 않았는지...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니
“포도밭 밖으로”라는 말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사랑 밖으로,
내 관심 밖으로,
내 마음 밖으로 등의 의미로 바뀌어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말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밭농사를 조금 지었지요.
학교 갔다가 오면 수시로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뽑고 돌아서면 또 풀이 나온다는 말처럼
한 여름이 되면 잡초도 아주 왕성하게 자랍니다.
아니 잡초의 생명력이 오히려 더 왕성합니다.
아무튼 원하는 작물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내어 밭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마 프란치스코를 알고 나서부터일 겁니다.
잡초라는 말을 쓰기가 미안해졌습니다.
어떤 풀이 잡초입니까?
내가 잡초라고 하는 풀들도 다 생명이고 이름이 있는데.
사실 잡초는 없고 내가 잡초라고 부를 뿐입니다.
나의 필요가 기준이 되고, 필요가 없으면 잡초가 된다는 것은
잡초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불성설이고 억울한 일입니다.
쓰레기도 그렇습니다.
돌도 그렇습니다.
필요 없다고 버리기에 쓰레기이지 왜 쓰레기이고,
요긴하게 쓰지 않으니 걸림돌이지 그 돌이 왜 걸림돌입니까?
오늘 비유의 주인은 소작인들이 자기 아들은 존중할 거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대는 깨어졌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중한 것은 자기 소유물로 삼고 싶은 재물이었지,
아들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람이 꽃보다 소중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재물보다 소중하지 않다니.
나도 소작인.
내 마음 밭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재물일까, 사람일까?
미움일까, 사랑일까?
욕심일까, 주님일까?
주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을 당신 건물의 귀한 돌로 쓰시는데,
나는 그들을 걸림돌쯤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주님마저도 귀찮은 것으로 여겨 내 마음 밭에서 골라내지 않았는지...
감사합니다.
그 모든 것을 소중이 여겨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