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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를 운반하시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
작가 :스탠리 스펜서 (Stanley Spencer, 1891-1959)
크기 : 153X 143 cm. 유화 (1920년 작)
소재지 런던 테이트(Tate) 미술관


성미술이라 하면 고색창연한 중세 작품만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픈 인간의 갈망이 그치지 않는 한 성미술은 언제나 시대 정황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는 데, 여기 소개하는 스펜서의 작품은 우리 눈에 익숙한 중세 화풍과는 전혀 다른 시도로 그리스도 수난의 의미성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 스펜서는 현대 영국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인 면모를 보이는 화가로 평가되는 분인데, 그는 자신의 신앙을 강렬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승화시킴으로서 현대 종교화가 중에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주님의 수난은 성서적 사건에 대한 회상이나 기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기에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 쿡엄 (Cookham)을 신앙적인 시각에서 처리함으로서 천상 예루살렘으로 변화시켰으며 신앙을 자기가 몸담은 현실 삶의 공간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종종 인물묘사에 있어 순진함을 가장한 지성적인 마네리즘을 보이기도 하나, 이 그림은 일상 삶에서 체험한 신비한 경험을 현실적 감각 안에서 신앙으로 표현했다는 면에서 탁월하기에 그를 종종 19세기 탁월한 시인이요 화가로서 성서를 바탕으로 한 <천국의 문>, <인간 영혼의 두 면모>등을 그린 윌리엄 블래이크 (William Blake, 1757-1827)에 비기기도 한다.

먼저 이 그림에서 작가는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를 오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익숙한 중세기 화가들처럼 깊은 슬픔에서 오는 침통한 분위기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생소한 새로운 관점에서 십자가 사건을 보게 만든다. 육중한 십자가를 중심으로 안정된 구도를 설정하고 보는 사람의 눈을 다양한 깊이 속으로 인도하는 방법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평안하게 해주고 있다.

오른편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경쾌하고 편안한 색깔의 붉은 벽돌집 창문에 기댄 많은 사람들이 유쾌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한편, 그 옆의 싱싱한 벽돌 담쟁이 넝쿨이 울창한 집의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밝고 화사한 표정의 두 사람을 통해 과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죽음과 슬픔과는 전혀 다른 경쾌한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과 회한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생명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슬퍼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경축해야 할 사건임을 강조하는 편으로 관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우리 인간의 품위는 더 없이 격상되었기에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은 바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란 면을 강조하고자 했다. 즉 크리스챤들이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의 성실성을 통해 주님과 함께 갈바리아의 여정을 계속하는 구원 사업의 협력자라는 밝은 면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작가에 있어 주님은 인간이 되셔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선택하심으로서 오늘까지 많은 편협한 크리스챤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원론적인 성속(聖俗)개념, 즉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시장이나 일터는 세속의 공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시정하기 위해 갈바리아와 자기 고향을 연결시킨다. 수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긍정적 이해를 통해 그가 살고 있던 정황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 더 구체적으로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자기 고향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그리스도의 수난 신비 안에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기억으로 재생시켰다.

마치 모세가 불붙은 가시덤불속에서 야훼 하느님을 만나자, 그 거룩함에 전율하며 신발을 벗는 것처럼 그에게도 모세의 눈으로 그의 고향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에서 겪었던 많은 사건들이 신앙 안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룩함으로 다가왔다.

왼쪽 그림 오른편에서 작가는 싱싱한 담쟁이 넝쿨에 둘러 쌓인 그가 태어났던 할머니 소유였던 집을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던 초세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보여 준 경건한 기억과 연결시킴으로 거룩함의 개념을 평범한 일상 삶으로까지 끌어내렸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의 뒤에 이어지고 있는 호구지책의 해결책으로 공사장에서 일하기 위해 사다리를 들고 가는 동네 사람들은 속세의 언저리를 방황하는 거룩함과 거리가 먼 그런 군상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와 같은 자기 사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크리스챤들의 일상 삶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으로 여겼기에 왼쪽 그림의 윗부분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창문을 통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작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삶에서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분의 고통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라 여겼기에 그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결코 슬픈 시각이 아닌 이 그림에서처럼 밝은 시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 왼편 그림의 왼쪽 아래 부분은 작가의 과거 회상의 의미성인데, 과거 회상에 있어 그가 1차 대전에 젊은 나이로 징집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떠나는 장면의 묘사 역시 고통과 불안의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 신비 안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귀결 짓는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를 사다리를 든 동네 노동자들이 따르는 장면을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는 동네사람들의 표정은 분홍빛으로 처리되어 하나같이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반면, 왼편 그림 왼쪽의 징집 부분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전쟁터로 향하는 작가를 배웅하기 위해 푸른 옷차림과 약간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창을 들고 정렬해있는데 이것은 그의 징집을 안타까워하는 가족들이며 그 가운데 수녀 차림과 비슷한 검은 옷의 여인은 작가의 어머니로서 죽음의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의 불안을 안고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있는데, 이것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시는 아들 예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모님의 모습과 같다고 여겼기에, 사다리를 운반하는 군중으로 표시되는 현재를 밝은 벽돌색과 푸른 담쟁이로 표현한 것과 달리 가벼우나 어두운 검정과 푸른 색깔을 사용했다.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작가는 수난의 전통적 개념, 즉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Christ bearing his cross)로 마음먹으나 작품이 완성되고 그 작품이 현대 미술의 정수(精髓)를 전시하고 있는 런던 테이트 (Tate) 미술관에 전시되기로 결정되었을 때, 그는 그림의 제목을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운반하시는 그리스도" (Christ carrying the Cross)로 바꾸어 달라고 청해서 그 이름으로 오늘까지 전시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 교회 안에 정착되어 있는 그리스도 수난의 속죄적 성격의 일방적 강조의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속죄적 성격을 떠올리게 된다.

성서에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속죄가 행해 졌다는 것이 언급되고 있으며, 히브리서는 그리스도 수난의 본질적 성격이 바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중개에 있으며 이것을 위해 그분이 하늘에 오르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히브리 7,25: 9,24).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 사건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희생되신 그리스도” 라는 면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성이 많이 희석되거나 감상적으로 되기 쉽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처럼 그분이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분의 보혈(寶血) 공로로 우리 모두가 구원 되었다는 일방적인 강조를 하다 보면, 현세 삶과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게 되며 이렇게 되면 신앙이 교회 안과 밖의 삶이 전혀 다른 이중성을 띄기 쉽고 오늘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면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오늘을 살기 위해서 크리스챤이 해야 할 가정과 사회 안에서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시킴으로서 크리스챤이 자기의 직분을 통해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증거를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하는 것만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증거가 아니라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주부의 노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가장, 입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재수생의 삶도 바로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고귀한 증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온 세계적으로 많은 감동을 준 영화 멜 깁슨 (Mel Gibson) 감독의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리스도 수난 장면의 충격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로 과거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한 감동을 주었는데, 이 영화는 마치 진공 소제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우리 모두를 골고타로 끌어 올려 그분의 처참한 죽음 앞에 서게 한다.

그러나 이런 영화를 보고 난 후 일상 삶의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현실 삶과 연관시킴으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은 미지수이며, 감상적이거나 아니면 현실 도피적인 십자가 공경이나 그리움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면에서 작가는 <무거운 십자가 지고 가신 골고타 언덕을 생각하며... 주 예수 바라보라 정성된 맘으로... 목석과 같은 자야 눈물도 없느냐 ?...>와 같은 감상적 반복 안에 안주하기 쉬운 십자가의 신비를 우리의 일상 현실 안으로 끌어 들여 현세 삶의 가치 재발견과 함께 십자가 신비의 영성적 의미를 현세 삶과 연관시켰다는데 가치가 있다.

오른편 그림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 오른쪽에 창문으로 내다보며 희열하는 분홍 빛 인생, 왼쪽은 미래에 닥칠 불안에 마음 조리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인생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주위에 있는데, 작가는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며, 주님의 십자가가 부활로 이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따르는 모든 크리스챤의 삶은 부활이란 현실적 완성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강조하고 있다.

신앙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성주간이 시작되고 있는데, 작가의 관점에서 나의 부활 신앙을 점검한다면 이 그림은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 부활의 증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크리스챤의 모습으로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좋은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 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 분을 뵙게 될 것이요” 하고 일러라” (마태오 28: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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