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도 성 토마의 의심
작가 :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Bernardo Strozzi, 1581-1644)
크기 : 89*98 cm. 유화 (1620년 작)
소재지 : 런던, 피터 무어 (Peter Moors) 재단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가장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바로 의심이었기에 부활 사건을 전하는 복음서에서는 한결 같이 이 점이 강조되고 있으며 (마르코: 16. 11: 루가 : 24. 11)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그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자 제자들의 불안이 가시면서 주님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 그림은 요한 복음 20장 24절-29절에 나타나고 있는 내용이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출타중이어서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도 토마가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전하고 있는데, 완고한 성격의 토마가 가진 강한 의심과 회의를 아시는 주님께서 토마에게 나타나셔서 수난의 상처인 못자국을 보이시면서 당신의 부활을 가르치신 내용인데, 이 그림의 작가인 베르나르도 스트로치는 카푸친 프란치스칸 형제로서, 당시 해외 무역으로 성공해 베네치아와 쌍벽을 이루던 이태리 제노바 출신으로 1610년 서품되었다.
그의 입회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도생활을 하면서 그림에 몰두했고 그의 화풍은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짙은 색과 밝은 색의 배합을 절묘히 했기에 풍요로운 삶을 즐기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호감을 주게 되었으며 17세기 제노바 화풍에 큰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 부활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서 신앙으로 회귀하는 토마의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명암의 대조가 뚜렷한 그림에서 작가는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창에 찔린 주님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토마에게로 향하게 하며, 주님께서는 토마가 손가락을 넣는데 불편이 없도록 당신 오른 팔을 들고 계시는데, 이 두 사람의 모습에 나타나고 있는 극명한 대조에서 죽음과 부활의 강력한 암시가 드러나고 있다.
세파에 그을린 대머리에 스승의 비참한 죽음이 주는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 방황하노라 자신을 추스릴 경황이 없어 넝마처럼 헤어진 옷을 입은 토마의 모습과 비록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신 흔적은 역력하지만 흰빛 광휘에 쌓여 있는 주님의 모습은 스승과 제자로 묶을 수 있는 동질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빛과 어둠, 불신과 믿음이라는 전혀 상반되는 모습으로 드러나며 이런 토마의 모습은 몇 년 동안 주님을 가까이 모시며 가르침을 들었으나 아직 믿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의혹과 회의 속에 방황하며 속진(俗塵)에 찌들린 서글픈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또한 토마를 비스듬한 시각에 세워 옆구리의 상처에 넣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한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배치하면서, 주님께서는 토마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모습으로 당신의 부활을 믿게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당신의 부활을 믿도록 하심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분은 토마에게 죽음을 이기시고 인간의 모든 제약에서 해방된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의 상처 받던 그 모습을 통해 당신의 부활을 믿게 하신다.
주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은 토마는 즉각적으로 자기를 감싸고 있던 죽음과 같던 의혹을 거두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고백을 하는데, 이것이 교회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첫 번째 신앙고백이며 여기 크리스챤 신앙의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고 죽은 그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며 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이며 이런 토마의 신앙고백에 주님께서는 “당신은 나를 보고서야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다”라고 하면서 작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토마에게 자기 옆구리 상처를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너무 밝고 생기에 차있다. 그분의 얼굴색은 십자가의 고통을 받은 붉은 피의 흔적이 있지만 가슴을 드러낸 부분의 색깔과 함께 더 없이 깨끗하면서도 아름다운 피부 색깔이 이 세상의 한계에서 벗어난 천상의 신분임을 암시하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한 부활하신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색채 처리, 특히 토마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이시는 주님은 신비스러울 만큼 완벽하다. 인간이 지닌 육체성의 생기, 영혼성의 맑음을 한 점 어색한 부분 없이 표현해서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생경스러움 없이 매우 매력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년 프랑스의 어떤 유명 화장품 회사가 우리나라 여인들의 기대에 영합할 수 있는 화장품만 개발하면 이것이 세계화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연구진들을 대거 파견해 색채 연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의 색 처리는 고통과 영광, 죽음과 생명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독창적이며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부활을 주제로 수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남겼으나 대부분 마태오 복음을 근거로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다. 즉 승리와 영광의 모습이 일방적으로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활 신앙의 핵심은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고, 장수와 영생에 대한 염원은 인간의 기본 본능이기에 이런 관점에서 부활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경축하는 분위기가 크리스챤들에게도 상당히 깊이 침투해 있으며 이것은 지성적인 차원에서 신앙을 찾는 사람들에게 실망과 의혹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는 이 그림에서 주님의 부활은 시체의 소생이 아니라 주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의 삶을 살고자 고통을 수용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결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주제를 그린 작가는 여럿 있으나 대부분 사실 묘사 수준에 그친 게 보통인데 스트로치가 이 작품을 통해 이토록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여과된 것이다.
그는 카푸친 형제로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의 작품 성향 때문에 동료 형제들, 공동체와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했고 공동체와의 불화 때문에 급기야 1531년 제노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이주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노래한 대로 역사의 많은 복음 운동이 “항상 흰 것으로 시작되어 검은 것으로 변하는 것”이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완되고 침체된 프란치스칸 삶을 마음 아파하는 일부 형제들의 쇄신 열망에 의해 1525년에서 1529년 사이에 카푸친 카리스마가 창출되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했고 스트로치가 활동하던 시기는 카푸친 카리스마가 한창 성장을 향해 나아가던 시기이기에 카리스마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철저히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의 열정이 대단했던 시기였다.
이런 초기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순수하면서도 생활 경험 부족, 주위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편협해서 극단으로 달릴 수 있음을 우리는 교회안의 여러 개혁 단체의 창설과정에서 볼 수 있다.
즉 순수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역사는 다양성이 표현됨을 알고 악한 것이 아니면 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역사에서 많은 개혁자들은 “순수함을 곧 좁음”이라는 틀에 끼움으로서 그 순수함이 광기로 흐르거나 아니면 자기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당시 카푸친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작가의 작품 역시 공동체 안에서 큰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형제들과의 불화 체험이 스트로치에게 있어 엄청난 고통이 되었기에 주님의 수난신비를 자기 삶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이 그림 안에서 나타나게 된다.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 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고통의 수용은 부활 체험으로 이어져 베네치아에서 그의 삶은 연명하는게 아니라 더 원숙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제한된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표현으로 보다 더 폭넓게 아름다움의 추구를 통해 당신을 찾고자 하는 이 형제를 축복하셔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를 내딛고 마음껏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배하셨다.
유럽 미술사에 남을 많은 작품들을 남긴 티치아노 (Tiziano, 1488-1576)나 띤토레또 (Tintoretto, 1519-1594)와 같은 화가들의 출현으로 유럽 전체에서 항상 예술의 선두 주자 자리를 지키던 베네치아의 예술계가 거목(巨木) 역할을 하던 바올로 베로네세(Paolo-Veronese, 1528-1588)가 죽은 후 잠시 침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스트로치는 베네치아 화단의 새로운 기둥으로 등장해 많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베네치아와 유럽 화단에 영향을 주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격언처럼, 그가 만일 “모든 아름다움의 추구는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 넓은 형제들과 함께 살았더라면 작가로서 그의 삶은 참으로 평탄했을 것이나, 그런 환경에서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 그림 자체가 바로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부활에 이를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떤 신분이든 그것이 수도자이건 재속 회원이건 일반 평신도이건 할 것 없이 포장지만이 아닌 알맹이가 있는 크리스챤으로 살고자 한다면, 또 성서가 강조하는 부활의 증인(사도행전 1,8)으로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처럼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고 이런 순간에 변절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성당에 있는 십자가나 내 방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은 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외친 토마처럼 살기로 결심한다면 부끄럽지 않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창으로 찔린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토마 곁에 어떤 제자가 호기심 가득 찬 의심의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는데, 나도 이 제자 곁에 토마와 나란히 서서 주님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리고 힘차게 외쳐보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 알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