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식스토의 마돈나(Madonna Sistina)
작가 : 라파엘로 산치오 (1483- 1520)
크기 : 265X 196cm ,켄버스화
소재지 : 독일 Dresden, 고전 회화 전시관
모성(母性)에의 그리움은 모든 인간이 지닌 가장 시원적이고 공통된 그리움이며 이 그리움은 종교로 승화될 수 있기에 여러 자연 종교에서 모성을 표현하는 신들이 있는데, 불교 문화권인 우리에게 익숙한 관세음(觀世音) 보살은 대자대비를 근본서원으로 하는 보살의 칭호이며 사바세계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한다는 자비의 신이다.
크리스챤의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인데, 이 자비는 바로 여성의 자궁성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야훼 하느님 안에 있는 모성적 요소는 바로 하느님의 본성이다. 성모신심은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공경 이전에 바로 성모님이 하느님의 자비를 너무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모성의 화신(化身)이기에 일부 광신적이며 편협한 개신교를 제외하고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중요한 신심 중 하나이다.
역사의 수많은 화가들이 자기 작가로서의 원숙한 시기에 성모님을 그렸으니 그 중에 유명한 화가가 바로 라파엘 산치오이다. 그는 성모님을 주제로 한 작품에 있어 다른 화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작이면서도 질에 있어서도 걸작을 많이 남긴 화가인데, 그의 천재성에 대해 <이태리 르네상스 미술가전>을 쓴 죠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 1574)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보통 같으면 하늘이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은총과 귀중한 선물들을 어떤 때 단 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예가 있는데, 라파엘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던 몬테펠트르 가문의 영향아래 있던 우르비노(Urbino)에서 훌륭한 화가이자 지성인이었던 죠반니 산치오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세련된 인문주의자로서의 교육과 함께 국제적인 조형교육을 받으며 화가로서 단단한 기반을 쌓고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의 부름을 받아 바티칸에 가서 교황청 프레스꼬 작업을 맡는 것으로 그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작업에서 그는 폭넓게 습득한 조형에 대한 자신의 풍부한 교양을 단순하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는 성격도 그림처럼 부드러워 누구나 마찰없이 지낼 수 있는 매력의 소유자였고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율리오 2세, 레오 10세 두 교황의 끔찍한 사랑을 받았고, 레오 10세 교황은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할 계획을 세웠을 만큼 사랑하고 신뢰했기에 그는 어느 화가들 보다 인복(人福)이 많은 좋은 환경에서 자기의 작품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가 로마에서 젊은 나이로 교황의 대단한 총애를 받는 처지가 되었을 때에도 교만하거나 경박함이 없이 세련된 교양과 예의를 지닌 젊은이로 처신해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과 함께 그의 인간성에서도 대단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 남아있는 그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용모 역시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꽃미남의 전형으로 그의 그림과 어울릴 만큼 수려한 용모이었으나 그의 천사적 성격과 달리 그는 아담의 유산인 관능의 쾌락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선 정서적 불안정과 의욕상실 증상을 보였기에, 어떤 때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자 친구를 불러와야 할 만큼 그의 삶은 천사와 야수가 공존하는 싸움터였다.
특히 빵 공장의 딸인 말가리타와는 긴 연애기간을 가지며 죽을 때까지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당시 교황 레오 10세의 총애로 추기경 후보로 거론될 처지의 사회적 신분의 차이 때문에 결혼은 하지 않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과도한 성애(性愛)와 무분별하게 관능의 세계에 몰두하다가 이것이 원인이 된 열병에 걸려 37세의 젊은 나이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중생제도 기관인 카톨릭 교회가 만든 윤리 잣대에서 보면 이 작가는 무절제하게 육(六. 肉) 계명을 범한, 천국 문 앞에도 설 자격이 없는 불합격 인생이나, 사랑과 자비의 화신(化身)이신 성모님은 어릴 때 어머니 사랑의 젓을 충분히 먹지 못한 원인으로 허약해서 비틀거리는 삶을 산 이 젊은이를 마치 아기 예수님을 안으시듯 당신 품으로 안아 주셨고, 작가는 성모님의 이런 사랑과 격려 속에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감동을 주는 걸작들을 창조했다.
이 작품은 이태리 피아첸사(Piacenza)에 있는 도미니꼬 수도원에 있던 작품으로 예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던 독일 쟉센의 제후 아우구스투스가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그가 만든 보석처럼 아름다운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 옆에 만든 드레스덴이 자랑하는 고전 회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된 많은 작품 중에 백미이며 대중적 인기 또한 대단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서 계시는데, 이 자세가 주목할 만하다. 성모님은 그냥 아기를 안고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우리 쪽으로 내밀며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초대하고 계신다. 한마디로 성모님의 존재성은 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와 당신 아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계심을 표현하고 있다.
성모님 뒤에 걸려 있는 진녹색의 휘장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황금 빛 화려한 조명이 성모자를 비추면서 환하게 드러나고 있는 배경의 구름 속에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천사들의 합창이 들린다. 이런 너무 장엄한 분위기가 압도되다 보면 경직된 분위기가 되기 쉬운데, 작가는 천재성을 발휘해서 이것을 우아한 생동감으로 대체했다.
어디서인가 산들바람이 불면서 성모님의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리고, 아기 예수님의 머리칼도 헝클어져 어머니 쪽으로 휘날리며 성모님의 베일은 바람을 받아 한껏 오른쪽으로 부풀게 만들어 자칫 경직되기 쉬운 종교화에 산뜻하고 경쾌한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 다음은 성모님의 눈빛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작가는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나 대단한 관능의 세계에 몰두했으며, 관능에의 몰두가 여느 탕아들처럼 허망감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성에 대한 집요한 추적으로 승화되었는데, 그의 일생에서 가장 오래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 마르가리타의 눈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즉 그는 여느 젊은이나 가질 수 있는 사랑하는 여인에의 사무친 그리움을 성모님께 투사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걸작을 만든 셈이며, 이 작품에서 성모님의 눈은 봄빛처럼 우리 마음까지 환히 비추며 우리 모두를 빨려 들게 만드는 모성의 고귀함으로 초대하게 한다. 모든 사랑은 다 하느님께 이르게 마련이듯 관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룬 이 젊은이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눈 모습으로 으로 승화되었다.
왼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교황 식스토 2세 (Sisto 2세: 재위기간 257-258)로 로마 박해시기인 발레리우스 황제 때 순교하신 분이며, 그 옆에 있는 바르바라 (Barbra)역시 박해시대에 순교한 성녀이신데, 이 두 분은 피아첸사시의 수호성인들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주문한 교황 율리오 2세는 식스토 교황의 얼굴을 자기 얼굴 모습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고, 천성이 부드러워 거절을 모르는 작가는 그의 뜻을 따랐는데,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 해괴한 희극이었다.
주인공인 식스토 2세는 순교 성인이었으나 자기 얼굴을 부탁한 율리오 2세 교황은 중세기 교황 중에도 악명 높은 교황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대단한 명예욕과 야심에 부푼 인간으로 교황이 되고 나서 교황으로서 일하기 보다 교황권을 확장하기 위한 전쟁을 위해 전쟁터에서 지낸 일이 더 많았으며, 역대 교황 중 부도덕한 생활 태도로 악명높은 교황이었는데 그가 이 아름다운 그림에 등장하고 있다는 자체가 웬지 꺼림직하며 마음에 걸린다.
교황은 오른 손으로 관객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 밑에 막강한 교황권의 상징인 삼중관 (Tiara)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교황의 집안인 로베라 (Rovera)가문의 문장인 도토리를 모델로 했기에 자기 과시욕이 대단했던 율리오 교황을 더 흡족히 할 수 있었다.
율리오 2세가 이 그림에 자신을 그리도록 한 것은 그 어두운 삶 안에 도사리고 있는 빛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라 믿는다. 라파엘의 작품 중에 이것이 유일하게 켄버스에 그린 대작이라는 면에서 이 작품은 거대하고 호화로운 자기 무덤을 구상했던 율리오 교황이 무덤이 완성될 때 까지 임시로 사용코자 제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목자로서 자기 사명감의 한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나 교황 율리오는 모든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노라”는 목자의 마음으로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록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거룩한 탈을 쓴 부도덕한 인간이었으나 그의 깊은 곳에 모성을 통해 표현되는 하느님에의 그리움이 있었기에 이 그림에 자기 모습을 새기길 원했다고 생각하면, 옆에 있는 바르바라 성녀와 함께 있는 것이 모든 이를 다 자녀로 안으시는 더 없이 자애로운 성모님의 모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니 인물 배역 역시 신앙의 표현으로서 합당한 자리이다.
오른 편의 바르바라 성녀는 역시 초세기 순교 성녀로 외교인 가정에서 주님을 알고 세례를 받자 믿음이 없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돌탑에 가두어 두고 갖은 말로 설득을 하면서 배교를 강요했으나 끝까지 거부하자 돌탑에 가둔 후 목을 베어 순교했다는 일화를 남긴 성녀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턱을 괴고 위에 있는 성모자를 쳐다보고 있는 천사들인데, 이들은 커튼콜을 받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당당한 성모자를 동경의 표정으로, 지루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다. 교황과 순교 성녀가 성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 분위기는 자칫 관객들을 압도해서 무겁게 만들 수 있는데, 이 천사의 표정이 이런 딱딱하기 쉬운 분위기를 희석시켜 모짜르트의 음악처럼 부드럽고 경쾌하게 만들었다.
성모님은 그냥 서 계시는게 아니라 사뿐히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면서 “내 아들 예수를 보아라!” 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