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 주간 화요일(마르 5,21-43)
오늘의 복음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다분히 도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에 지중해 연안의 모든 민족들은 여자 아이의 출생을
축복으로 보기보다 불행의 산물로 보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여자는 일생 적합한 인간 대접을 못받는 존재였다. 성경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모두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서로 동등하고 상호적인 관계로 지음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사회로 발달되어 온 사회 안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의 성(性, sex)를 만족시켜주고, 또 자손을 번성시켜주는
도구로서 밖에 인식되지 않았고, 여성들 또한 당시까지는 크게 저항하지 않은 듯 하다.
이러한 지극히 남성우월주의가 판치고 있던 당시의 유다교 문화 안에서 예수님은 오늘 여성을 해방시킨다. 그리고 일으켜 세운다.
먼저,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자 예수님은 기꺼이 따라나서신다. 아이의 아비인 야이로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죽어가는 계집아이 하나쯤 무시하고 치유의 손길을 뻐치지 않아도 크게 흉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말이다. 그러한
아이에게 가서 궁극적으로 “탈리타 쿰!”("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하신다.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인간 취급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여성에게 생명을 다시 불어넣으신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삽입되어 있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하혈하는 여인은 부정한 존재였다. 원래 무시되던 여성성에 부정이라는 굴레까지 쓰고 살았으니 얼마나 그 삶이
비참했을까! 그러한 부정한 여인이 정결한 남성에게 손을 댄다! 여느 남성 같았으면, 이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돌을 던져 죽게
하였겠지만 예수는 그 여자가 두려워 떨며 나와서 사실대로 다 아뢰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하고 이르셨다. 그녀가 손을 댄 것을 문제 삼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병에서 벗어나라" 하시며 병고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처럼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여성을 당시의 억압의 사슬에서
부터 해방시키셨음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이여, 시기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오늘의 복음은 또 다른
놀라운 함의를 담고 있으니 그것은 "열 둘"이라는 숫자에 의해 드러난다. 하혈하는 여자는 "열두" 해 동안이나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의 나이도
"열두" 살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12라는 숫자를 통해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때, 은총의 때가 찼음을 알리는 것이며, 단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포함하는 모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해방자이시다. 모든 억압과 종속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그분인 것이다. 따라서, "벗어나라",
"일어나라!" 하는 말씀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유효하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우리 모두 그분께 감사드리며, 떨쳐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