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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의 창조 (La Creation de l‘homme)
작가: 마르크 샤갈 (Marc Chagal)
크기: 300 X 200cm (1956-1958)
소재지: 프랑스 니스(Nice) 국립 박물관


교회미술이나 성미술이라 할 때 작가가 크리스찬이거나 아니면 작품의 주제가 성서인지에 기준을 두는 게 보통이나,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 샤갈은 좀 예외적인 인물에 속한다.

그는 유대인이고 철저한 유대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구약 전통만을 모든 것으로 여기면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 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하시어 다른 민족들과 다르게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되리라 믿기에, 모든 인류를 하느님의 백성과 형제로 여기는 크리스챤적인 시각에선 참으로 편협하고 답답한 신앙의 바탕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선에 도취되었기에, 그의 종교관은 성서를 열심히 읽을수록 유대교의 편협성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야훼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 같이 햇빛을 내려 주시고 옳은 사람이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주시는” (마태오 5.:4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이처럼 경건한 유대교 신자로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야훼 하느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경계를 벗어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유대인의 작품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온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우리의 시각으로도 막힘이 없는 수준 높은 성미술이다.

그는 1887년 오늘의 리투아니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는 러시아의 비테브스크라는 조그만 촌락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은 해산물 창고의 사무원이었으며, 모친은 잡화상의 점원으로 일했으니 그의 처지는 알만하다. 9남매의 맏이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신앙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그러기에 그는 찌들린 가난을 체험했던 자기 고향의 모든 것을 일생 동안 사랑했으며, 이 고향에서의 추억이 그의 작품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재가 될 수 있었다.

푸줏간 주인, 마을의 집달리, 행상인, 이발소, 잡화상, 은행, 소, 말, 양과 같은 가축들, 장터에서 만난 곡예사 등, 고향에서 만났던 모든 것들이 그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이런 주인공들은 찌들린 삶의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보호를 굳게 믿기에 언제나 낙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유로운 인간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 소재에서는 다른 작가들에게 흔히 등장하고 있는 삶의 여유를 누리는 소위 세상의 눈으로 본 고귀한 신분이란 사람들은 없고, 오직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면서도 하느님을 믿기에 더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민초(民草) 인생들이 언제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의 작품의 큰 두 주제는 그에게 삶의 활기를 준 성서와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더없이 행복 했던 고향, 비테브스크였다.

그에게 있어 바라 볼 수 있는 하늘은 성서요, 삶의 휴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땅은 바로 고향 땅이었다. “성경과 모챨트가 없는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만큼 그는 성서를 삶의 원천으로 받아들였기에 그의 방대한 작품 소제에서 성서는 단연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1973년 이 작품이 전시된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 개관식에서 성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청년기 이후 나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다.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시정(詩精)의 원천이다. 나는 내 삶과 예술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성서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 비밀과 자연의 반향과 같은 것이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한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사랑과 희망의 색깔로 인생을 채색해 나가야 하며 이런 사랑 안에 삶의 사회적 논리와 모든 종교의 핵심 내용이 들어있다.”

행복한 철학자로 불리는 가스통 비슐라르는 성서와 샤갈의 관계를 “그가 성서를 읽으면, 이것은 즉시 한 줄기 빛이 된다.”라는 찬사에 대해 작가는 “나는 성서를 읽었던 게 아니라 성서를 꿈꾸었다”는 표현대로 성서는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을 17점을 그렸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의 창조>이다. 창세기 1장 26절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신 말씀에 따라 금방 창조된 아담과, 창조하신 후 무척 흐뭇해하신 하느님의 걸작품, 아담을 두 팔에 안고 공중을 날고 있는 천사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하느님의 창조의 역동성과 계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른쪽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중심으로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왕들과 예언자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장대한 역사를 그리고 있는데,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인인 그가 예수님을 자기 작품에 그린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성서에 깊이 몰두함으로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허무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편협한 유태인으로서 경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삶의 결실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신약은 구약에 숨어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밝혀진다. Novum in vetere latet, Vetus in novo patet.”는 말씀을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시원하고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창조된 아담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는 인간을 만든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창조는 한 인간과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임을, 그렇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피조물의 처지에 안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않되고, 계속적으로 하느님 창조사업의 동반자요, 협력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아담은 성인으로 나타나면서도 그 표정이 너무 앳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천사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모습, 즉 천사의 손안에서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잠든 어린이처럼 축 늘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께 전적인 의탁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전자제품은 그것을 만든 회사의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최고의 효율성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인간도 자기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게 인생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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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아가 1> (Song of Songs)
크기 : 148 X 172cm (1960)
소재지 : 프랑스 니스(Nice) 국립 미술관


이 작품은 작가가 <아가>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 다섯개 중 첫 번 것이며,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살펴야겠다. 위에 언급한대로 그는 성서에 몰두하게 되면서 유대인의 좁은 삶의 테두리를 허물고 많은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키우면서 작품 활동의 폭 역시 넓어지게 되자 새로운 갈망을 느끼게 되었다.

야수파 작가인 앙리 마티스 (H. Matisse: 1869- 1954)가 방스의 도미니꼬 수도회 소속 로자리오 경당을 위한 작품을 만든 것처럼, 자기도 성당을 위한 작품을 제작키로 하고 이것을 남길 수 있는 성당을 찾던 중 같은 도시에 있던 가르멜 수도원 소속 성당으로 폐쇄된 상태에 있던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 그곳에 자기의 작품을 남기고자 결심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 위에 감상한 <인간의 창조>를 위시해서 <에덴 동산>, <낙원에서의 추방>, <노아의 방주>, <노아의 무지개>, <세 명의 천사와 아브라람>, <이삭의 제헌>, <야곱의 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선 모세>, <므리바의 바위를 치는 모세>,<십계명을 받는 모세>와 여기 소개하는 <아가를 주제로 한 작품 5점>을 완성해서 그의 성서적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다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제동이 걸리게 된다.

즉 그곳 교구장이신 주교님께서 여기 소개하는 이 작품과 아가를 주제로 한 다른 4점이 너무 에로틱해서 성당에 전시하기는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하시자, 망연자실 하던 중 예술과 문화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감각을 지녔으며 문화부 장관으로 프랑스를 명실상부한 문화 대국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앙드레 말로 (Andre Malraux)의 도움으로 이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단독 미술관을 짓게 되면서, 성당용으로 만든 성미술 작품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미술관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론적으로는 막힘이 없으면서 실재 표현에 있어선 너무 막힌 곳이 많은 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미망(迷妄)의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해 항상 앞선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든 우리 교회는 역사 안에서 앞서 중생들을 인도해야 할 어떤 순간엔 그 복잡한 제도와 아무런 현실적 합리성이나 타당성도 없는 법과 전통이라는 덫에 걸려 뒷북도 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행착오를 자주 범했으며 이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외설에 대한 의혹으로 교구장님의 심려를 끼친 이 뜨거운 작품을 보자. 외설 시비는 그만두고라도 확실히 이 작품은 다른 성미술 작품과는 달리 뜨거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솔로몬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혼례식 만남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성(性)에 대한 부정적인 염려가 대단했던 교회는 여기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성적인 표현의 진의(眞意)를 찾기보다 성적인 표현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것을 숨기기 위해 우의적(寓意的) 해석을 해서 아가서에 나타나고 있는 신부는 교회요, 신랑은 바로 야훼 하느님으로 해석했으며 특히 끌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1090- 1153)는 <아가서 강론: Sermones in Cantica>에서 여기에 나타나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하느님과 신자, 교회와 하느님의 관계라는 철저히 영성적인 관계임을 강조했다.

17세기 까지 이런 식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샤갈은 이 그림을 통해 시원하게 그 본래성, 즉 하느님이 원하신 성(性)과 사랑의 진면목을 마치 오래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문화재를 발굴해서 새롭게 단장하듯이 이 작품을 통해 산뜻하고 생기있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성서적 사랑은 연인의 사랑처럼 뜨거운 것이기에 그의 작품 역시 아무 부담이나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뜨거움을 표현하게 되었다.

전통 안에서 교회가 전전 긍긍하며 분리시킨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구분, 거룩한 사랑(聖)과 속된 사랑(俗)의 구분이 샤갈에게는 애초부터 큰 의미가 없을 만큼 그는 성서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성애(性愛)의 열기로 뜨거운 신혼부부 신방의 색깔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단장되어 있다.

다음 아가의 구절을 음미하며 이 그림을 보자.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 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러운 임의 이름,
따라 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으로 데려 가 주셔요.” (아가서1: 1-4)

과거 교회가 했던 신비적 해석, 아가서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해 가졌던 사랑의 관계라는 신비적 해석에서 떠나 그는 철저히 남녀의 사랑으로 묘사했고 이것은 작가의 성서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기의 부부생활의 체험을 통해 완성된 것이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어느 부부도 따르지 못할 만큼 뜨거운 사랑의 연속이었다.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벨라와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했고, 그녀가 죽었을 때 너무 상심해서 9개월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으나 다시 재혼하면서 이 상처를 내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처럼 성애(性愛)로 표현되는 부부생활은 그의 작품 활동에 엄청난 창조적 에너지를 가져다주었기에, 그의 결혼, 사별(死別), 재혼(再婚)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사랑의 아픔과 슬픔, 회복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성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그가 추구하고픈 최고의 이상과 부부생활이라는 가장 만족스러운 자기 현실이 어우러진 멋진 아름다운 아가서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아가서는 여러 동물들을 통해 많은 상징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가령 <들판에 뛰노는 노루>, <비둘기>, <샤론의 수선화>, <그대의 젖가슴은 새끼 사슴 한 쌍>, <그대 입술에는 꿀이 흐르고, 혓바닥 밑에는 꿀과 젖이 괴어있구나> 등인데 이런 표현은 작가의 인생관과 너무 어울리기에 그는 아무 부담이나 주저 없이 담대하고 시원하게,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에로틱해서 성당에 걸기엔 좀 뭣하다는 이런 염려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이 미술관이 개관된 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대하면서, 신비적 해석으로 일관했던 교회가 주지 못했던 강렬하고 건강한 성서의 감동을 받고 있기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유로든지 군덕지가 붙은 것이나, 복잡 미묘 아리숭한 것을 거부하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도 시원하고 통쾌하게 사랑의 복음 선포를 하고 있다.

어리석고 부질없는 상상인가? 만일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시대의 표징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혜안과 용기가 있어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성당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인간적 감동만이 아니라, 그동안 무심히 살아온, 더 나아가서 속된 것으로 여겨온 성애(性愛)로 표현되는 인간 사랑을 하느님 안에 통합된 고귀한 것으로 바라보는 감동이 훨씬 더 커서 “말로나 혀끝에 붙은 사랑이나” (요한 1서 3:18) 머릿속을 맴도는 그런 사랑이 아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마르 12: 30- 32)는 하느님 말씀의 이해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상상을 하게 되면서,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복음 선포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제도적인 교회가 자신의 한계점 때문에 미진했던 면을 보완해 준 <살아있는 현대인의 언어로 표현된 새롭고 진실한 사랑의 복음서>, <사랑의 제5복음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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