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늘 주님께서는 겐네사렛 지방에 당도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몰려듭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주님께 대한 경외심 때문일까요,
병자들은 주님이 몸에 직접 손을 대지 못하고
옷자락의 술에라도 손을 대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상상을 하니 병자들의 그 간절함과 믿음이 눈에 그려지면서
다른 한 편, 주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으셨는지
저 자신을 성찰하면서 묵상케 됩니다.
우선 수많은 손이 주님을 향하여 뻗쳐있는 것이 그려집니다.
그 손들은 궂은일들로 거친 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일을 했건만 빈손인 손들이고,
그래서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한 손들이며,
그래서 도움을 달라고 내민 손들이고,
그러나 거절의 부끄러움을 수없이 겪은 손들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데는 더 이상 내밀 데가 없어서 주님께 몰려든 손들인데,
이들이 주님만은 자기들의 손을 뿌리치지 않으시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호수 다른 편에서 주님께서 자기들과 같은 병자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해 이미 들었던 모양입니다.
치유의 능력에 대해서도 들었겠지만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 주셨다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의 주님이시면서도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얘기를 들은 거지요.
그래서일 겁니다.
그들이 주님 옷자락의 술에 겨우 손을 댓을 뿐인데도
그들에게는 치유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치유의 기적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구원이 발생합니다.
마르코복음은 아마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썼을 겁니다.
옷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치유를 받았다고 하지 않고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몸의 병든 일부가 치유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굳이 외래어를 쓰며 떠들썩하는 것이 웃기고 못마땅하지만,
그래서 저는 그런 말을 애써 외면하고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쓰는 것은
그만큼 치유되어야 할 마음의 병들이 사람들에게 많고
더 나아가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이 많음을 반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힐링을 위해 어디를 갑니까?
어디를 가고 누구를 찾아 갑니까?
자연을 찾아 갑니까, 성당을 찾아 갑니까?
사람을 찾아 갑니까, 주님을 찾아 갑니까?
많은 사람이 주님 대신 다른 곳을 찾는 현실에 저의 책임을 느끼며
이들을 위해 우리가 제가 뭣을 해야 하나 생각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