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능동적 불구자>
주님께서는 오늘 매우 과격한 말씀을 하십니다.
손이나 발이나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아예 없애버리라 합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없으니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들 불구자들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천국에는 온통 외팔이, 절름발이, 애꾸눈 등 불구자들뿐이며,
그러니 오늘 주님의 말씀은 불구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불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 때문에 저는 눈으로 짓는 죄를 생각해봤고,
눈이 없으면 짓지 않을 죄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배경이 되었던 앙드레지드의 전원 교향곡 덕분입니다.
여기서 주인공 목사는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으로 장님 소녀를 사랑했고,
소녀는 하느님의 사랑을 대신하는 아버지 같은 목사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되고 잘 생긴 목사의 아들을 눈으로 보게 되자
아버지 목사에 대한 영적인 사랑 대신 아들에 대한 연인의 사랑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목사와 아내와 아들과 소녀 사이에
시기질투와 미움과 죄의식 등의 온갖 안 좋은 감정들이 생겨나면서
관계들은 완전히 깨어지고 소녀는 자살하는 안 좋은 결말을 맺게 됩니다.
사실 간음죄는 성적인 욕구와 욕망이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목욕하는 바세바를 보지 않았다면
욕망도 올라오지 않고 간음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듯
욕구와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지 않는 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마음에, 정신에, 영혼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고, 오히려
안에서 더러운 것이 나오고 마음이 죄를 짓는 거라고 말씀하시듯
우리 안의 것, 곧 정신이, 마음이, 영혼이 죄를 짓는 것이지만
정신이 죄를 짓는다고 정신을 빼 버리면 정신 나간 사람이 되고,
마음이 죄를 짓는다고 마음을 빼 버리면 마음이 없는 사람이 되며,
영혼이 죄를 짓는다고 영혼을 빼 버리면 영혼이 없는 사람이 되니
정신을 차리도록 눈을 하나 빼 버리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손을 하나 잘라 버리며,
영혼이 건강하도록 발을 하나 잘라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저는 꿈을 꿉니다.
보는 것들에서 봐야 할 것을 보게 되고,
듣는 것들에서 꼭 들어야 할 것을 듣게 되며,
내 발이 어디를 가든 내 발이 복음 선포의 발이 되고,
내 손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사랑의 따듯한 손길이 되기를.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못 보고,
못 듣고,
못 가고,
못 하는 불구자가 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능동적인 불구자가 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주님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