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사순시기를 열면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는 지금이 매우 은혜로운 때라는 말씀을.
그런데 지금 이 사순시기가 왜 은혜로운 때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때이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라고 얘기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이라?
무슨 뜻일까요?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셨는데 거부하고 안 받아들인다는 뜻일까요?
마치 편지를 보냈는데 수취인이 거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뜻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 다른 뜻일 것입니다.
받기는 받았지만 은총의 효과가 없는 것 말입니다.
40일간 품은 달걀이 병아리가 되지 못한 것처럼
은총을 받았지만 구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무정란을 품었거나 잘못 품어서 달걀이 곤달걀이 되거나.
그렇다면 무정란 같은 은총은 어떤 은총입니까?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고통, 곧 은총을 우리가 사랑 없이 품는 겁니다.
사순절 40일은 모세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40년,
우리가 태어나서 하느님 나라에 가기까지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고통을 받는 것이 한자어로 수고수난受苦受難이지요.
그런데 이 고통을 사랑으로 기꺼이 받아 사랑의 결실을 맺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 고통을 억지로 받아 고통을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것이 고통일 뿐이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준 고통이 은총이 되지 못해 구원을 낳지 못합니다.
결혼하고 살지만 사랑이 없어 아이도 없고 행복도 없는 부부처럼
하느님이 사랑으로 준 고통이 사랑을 받지 못해 구원을 낳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곯은 달걀 같은 은총이란 어떤 것인가요?
곯은 달걀이란 병아리가 되다 만 것이지요.
무정란이 아예 병아리가 생기지 않은 것이라면
곯은 달걀이란 병아리가 생기긴 하였지만 끝내 부화하지 못한 겁니다.
끝까지 잘 품었어야 하는데 잘못 품었거나 품다가 말았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고통을 은총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기는 하였지만
그 사랑이 40일 내내, 아니 40년 내내 성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정된 알을 끝까지 잘 품은 닭이 병아리를 부화하는 것처럼
고통을 끝까지 잘 품은 사랑이라야 고통이 구원을 낳는데
사랑이 고통을 끝까지 품지 못하고, 성실하게 품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로부터 시작되는 저의 사순절이 곤달걀과 같지 않을지, r
아니, 아예 저의 인생이 이 곤달걀과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는 오늘 아침입니다.
그러나 이아침, 걱정만 하지 않고 또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고통을 주실 때 고통이 은총임을 알아채게 되기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은총인 고통을 나도 사랑하게 되기를,
성실하신 하느님 사랑처럼 고통에 대해 나의 사랑도 성실하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