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들은 생각은
나의 됫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왠고 하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우리가 되질을 받을 거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선 어떤 되이냐 우리는 봐야 합니다.
우리의 되가 미움의 되이면 그 되로 미움을 받을 것이고,
우리의 되가 복수의 되이면 그 되로 앙갚음 받을 것이며,
우리의 되가 단죄의 되이면 그 되로 단죄 받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되는 얼마나 큰지를 봐야 합니다.
나쁜 것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그 되를 작게 하거나 부숴버려야 하겠지만
좋은 것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그 되는 되도록 큰 것으로 바꿔야겠지요.
그렇습니다.
됫박이 커야 많이 받습니다.
음식을 해도 손이 큰 사람이 있고,
무엇을 줘도 펑펑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주변에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은 준 것만큼 받는 것도 많습니다.
이는 <주거니 받거니>를 잘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항아리 물을 비워야 새물로 채울 수 있듯,
또는 논 이쪽으로 물을 빼면 저쪽에서 물이 들어오듯
사실 돈도 그렇고 인간사 많은 것들이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러니 쩨쩨하고 인색한 됫박이란 됫박이 작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그리고 그것이 크건 작건, 그것을 움켜쥐고 있음으로
돌고 도는 흐름이 막혔거나 아예 끊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작고 인색한 됫박을 크고 넉넉한 됫박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작은 됫박을 큰 됫박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의 인간적인 됫박을 아예 하느님의 됫박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손이 크고, 통이 큰 사람의 됫박이 아니라
사랑의 됫박이고, 하느님 사랑처럼 큰 사랑의 됫박인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한량없는 하느님 사랑의 됫박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나쁜 것을 주고받는 됫박이 아니 되어야 하겠지만
좋은 것을 주고받을 지라도 그것이 사랑이 되게 해야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이 되게 해야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작은 것을 조금 줘도 사랑으로 주기에 사랑이 발생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주면 하느님이 발생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사랑의 됫박으로 주면 쩨쩨하고 인색하지 않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의 됫박은 그 됫박이 크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많이 주는 것, 곧 수량적으로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다 주는 것, 아낌없이 그리고 자기 것으로 남김없이 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의 됫박은 늘 빈 됫박입니다.
그러나 비어있어도 늘 또 채워지고 충만한 됫박입니다.
오늘 우리 됫박을 바꿔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