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기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 성 세바스티아노
작 가 :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50- 1523)
크 기 : 판화 178X 164: 1493
소 재 지 : 이태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일반적인 현상으로 경제적으로 살기가 나아지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사회 분위기에서 학문과 예술 분야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 보통인데, 반대로 인간의 재능 계발에 빈곤이 얼마나 좋은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증거를 바로 이 작가에게서 볼 수 있다.
저녁이면 허기를 채워줄 음식만 아니라 잠자리를 찾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비참한 가난 속에서 태어난 작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면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능력 있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과 집념으로 예술에 몰두하게 되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자, 당시 유명한 조각가였던 베로키오( A. Verocchio :1435- 1488)의 공방에 들어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작품 활동에 몰두하여 자질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명성이 로마에도 알려지자 문화와 예술에 대한 대단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으며 로마를 오늘날처럼 볼거리 많은 도시로 변화시킨 프란치스칸 교황인 식스토 4세 부름을 받아 바티칸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490년대부터 그는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활동했으며 이 작품은 작가의 전성시대 작품인데, 당시 피렌체의 정치 사회 분위기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1492년 예술의 큰 옹호자인 로렌죠 델 메디치(Lorenzo del Medici: 1449- 1492)의 죽음으로 르네상스 운동의 진원지로서 경쾌한 피렌체의 분위기는 급변하면서 여러 면에서 위기를 당하게 된다.
그는 세련된 교양인에다 탁월한 정치 외교적 수완으로 피렌체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시켰기에 <위대한 노렌죠: Lorenzo il Magnifico)라는 명예를 받을 만큼 유능하고 멋있는 인간이었다. 여기에다 외설적인 시까지도 작사할 만큼 전형적인 자유인이었던 로렌죠의 영향에 의해 피렌체는 여러 이교적인 요소가 거부 없이 수용되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도시가 되었는데, 프랑스 군대가 침입하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 도미니코 회원이며 산 마르코 수도원 원장인 사보나놀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가 르네상스 운동에 반기를 들면서 혼란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피렌체의 위기는 하느님의 뜻을 망각하고 인간성 회복의 미명 아래 이교도적인 풍습에 빠진 피렌체에 내리는 천벌이라고 외치며 피렌체 시의 정화를 외치자 많은 젊은이들이 동조하면서 이교도들의 미술품 서적들을 소각하는 <허영의 소각: Bruciamenti della Vanita>을 행하면서 피렌체시를 르네상스의 영향에서 이탈시켜 신정정치(神政政治)를 실시하면서 피렌체 시민 전체에게 수도자들처럼 엄격한 금욕생활을 요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의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들도 그의 주장이 점점 더 과격해지자, 인심을 잃고 그를 동조하던 두 수사와 함께 화형을 당했으나 르네상스에 도취되어 정신없이 치달리는 삶을 살던 피렌체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모든 분야에서 절제와 자제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좋은 면이었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사보나놀라의 영향이 대단했던 시기였고 예술에 있어서도 엄격함과 단순함이 요청되던 시기였다. 이 작품은 피렌체 근교 피에솔레(Fiesole)에있는 도미니코 수도원 성당 제단화로 그린 것인데, 그 도시가 존경하는 성인들을 함께 그리는 것은, 데이시스(Deisis)라고 하는 동방교회에서 유래된 것인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세례자 요한과 성 세바스티아노가 서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특징은 감미롭고 감상적인 화풍을 단순화한 인상으로 표현하면서 좌우 대칭적 구조를 유지함으로서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배경처리에 있어 청정한 분위기가 넘치는 풍경 묘사가 특징인데, 이 작품에서 이런 특징들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전체의 구성이 무게 중심을 둔 제단화로서 손색이 없으면서도 이전의 르네상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이 배제되고 매우 절제되고 소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앞에 언급한 사보나놀라의 영향 아래 있던 피렌체 정서와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깨 수준이 같은 높이를 유지하면서 장엄하면서도 단순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기둥 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더 없이 청아하면서도 종교적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은 아무런 장신구나 무늬가 없이 단순하기에 전제적인 분위기를 종교적인 명상으로 인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이기에 많은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세례자 요한을 그렸으며, 성서에도 나타나는 대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사는 (마르코 1, 5)근엄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나 여기에서는 좀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왼손에 십자가를 들고 오른 손으로 아기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두고 증언한 “이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 26)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자신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실 세례자 요한과 그리스도의 나이는 거의 비슷하나,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며 마리아를 통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을 아기의 모습으로 그렸다. 아기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키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사이, 성모님의 시선을 세바스티아노를 바라보게 하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세바스티아노는 로마 근위 장교로서 297년경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Dioclesiano)박해 때 순교하신 성인인데, 그는 황제의 측근에서 일하던 근위 장교로서 충실성으로 황제의 사랑을 받아 왔는데, 그가 크리스챤이 되자 그를 아낀 황제는 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유하여 배교를 권했으나 거절하자 동료 병사를 시켜 화살을 쏘아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배교 하도록 유도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했다고 한다.
초세기 교회는 그를 성 스테파노의 뒤를 이은 순교자로 공경하기 시작했기에 이 작품에서도 순교하시면서 “아, 하늘이 열려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이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외친 (사도행전 8, 56) 스테파노를 연상키 위해 시선이 하늘을 향하게 그리고 있다.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공경은 교회 안에서 계속 이어지다가 690년경 로마에 페스트가 퍼져 큰 혼란에 빠졌을 때, 그에게 기도함으로서 페스트가 물러나자, 성인은 민간 신앙의 인기 대상이 되어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초기에 그의 모습은 수염을 기르고 나이가 듬직한 건장한 무사형으로 나타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르네상스에 와서 인간성의 재발견과 함께 육체의 가치성을 강조하는 경향에 힘입어, 성덕과 함께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묘사됨으로서 이 작품에서처럼 젊은 미남자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성인의 왼팔에 박혀 있는 화살촉은 십자가의 주님께서 창에 찔리고 손발이 못에 뚫림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불운을 제거하는 상징적인 표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특징은 나타나는 인물들에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으나 감정표현이 전혀 없어 그 역할을 하는 예쁜 마네킹이 서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를 <르네상스의 예술가 전기>를 쓴 죠르죠 바사리(G.Vasari:1511- 1574)는 그의 성격과 생애에서 찾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비참한 빈곤에서 해방되기 위한 호구지책의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의 자질과 실력을 인정받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수입원이 좋은 것이 바로 종교화였기에, 성서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신앙심이 없었고, 영혼의 불멸과 같은 것은 믿지도 않았고, 종교적인 것에 귀를 기울이는 적이 없었으며 오직 재산과 돈에만 온전한 관심을 두었기에 그의 이런 신앙에 대한 정서적인 무감각이 등장인물이 자기 역할은 제시하면서도 표정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이 작품은 증명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성 세바스티아노 이다. 신앙심이 없는 작가는 종교화를 그리면서도 신앙적인 감정표현은 하는 데는 별 관심도 없어 서툴었지만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의 표현에 대해서는 대단한 노력을 했기에 탁월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희랍문화의 영향으로 인간적 아름다움에 대한 극단의 동경심을 가진 당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성 세바스티아노의 육체를 한껏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서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지루한 인상을 주기 쉬운 그림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 점 군살도 없이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젊은 미남자가 기둥을 배경으로 왼팔에 화살이 꽂힌 채 서있는 것은 순교의 처절함이나 숭엄함과는 거리가 먼 체육관에서 몸 다듬기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미남자의 싱그러운 모습처럼 나타난다.
아래 부분을 가린 비단 가리개는 생명의 자연스러움과 조화되는 인공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고귀한 신분의 색깔이었던 보랏빛 천에 정교하게 처리된 매듭과 금실로 수놓은 비단 가리개는 신체의 중간 부분을 감싸고 있어 더 큰 관심과 호기심을 끌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풍요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세련된 아름다움과 안락함의 상징이며 살기가 좀 나아지면서 우리 주위에도 안개처럼 확산되고 있는 물질적 풍요가 줄 수 있는 이승 삶의 매력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은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작가는 성 세바스티아노를 통해 다른 종교화에서 보기 힘든 인간 육체의 찬미, 풍요로운 삶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인공미의 극치를 드러내면서, 천상의 가치를 강조하는 종교화를 통해서도 현세 삶의 아름다움과 즐거움, 풍요로움 가운데서 영글 수 있는 멋을 한껏 표현했다.
사실 그는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성공으로 태평성대를 살고 있던 피렌체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려, 큰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 재력으로 늘그막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 세상적 의미의 오복을 누리는 삶을 살았는데, 종교화로서는 좀 엉뚱하게 세상적인 매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세바스티안 성인을 그린 것은 현세 삶에 대한 자신의 염원을 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세바스티아노의 인간적 아름다움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것에서 또 다른 영성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세례자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이었기에 여러 작가들이 많은 작품을 남겨 익히 알려져 있었고, 성모자는 교회 전체에 알려 진 처지이니 새로운 관심을 끌기 어려운 처지에서, 세바tm티아노 성인의 등장은 르네상스의 목표인 인간 예찬 경향이 고조된 분위기에서 사람들에게 대단한 매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등장시켰다.
작가는 성인의 인간적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 26) 는 성서 구절에서 드러나듯 인간의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의 반영이고 보면, 그는 하느님께 충실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성인의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자신을 만든 주인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아름다운 영혼과 육신을 지닌 성인의 아름다움을 통해 이 작품의 주인인 하느님의 찬미에로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