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시도다.”
주님께서 태어나신 12월 25일을 역으로 계산하여
교회는 3월 25일을 마리아가 주님을 잉태한 날로 기념합니다.
그러나 마리아께서 주님을 낳으신 12월 25일도,
탄생 9개월 전에 주님을 잉태한 3월 25일도
실제로 이 날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함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똑같이 참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얘기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 마리아의 잉태가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마리아가 성령 이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에 의해 잉태되는 것이지만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잉태하는 것이지만
성령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인 <능동적인 수동태>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잉태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수동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느 인간적인 수동태와 다른 영적인 수동태입니다.
여느 인간적인 수동태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수동태지만
영적인 수동태는 주님을 잉태하기 위한 창조적 수동태이고,
성령께서 잉태하시도록 성령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겸손한 수동태입니다.
이는 마리아처럼 겸손한 수동태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거라는 예고를 들었을 때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시지만
이내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리고 모시려고 할 때
주님을 만나 뵙고자 하는 열성이 있어야 하고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픈 열망이 있어야겠지만
성령에 힘입지 않고 내 힘으로 주님을 뵙거나
성령의 열망이 아닌 욕망이 잉태케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주님은 강짜로 만날 수 없고,
집착으로 뵐 수 없으며,
욕망으로 잉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잉태를 위해 우리는 욕망을 몰아내야 하고
욕망 대신 성령을 열망해야 하며
내 안에 모신 성령의 열망으로 주님을 잉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런 마음으로 삼종기도를 더욱 정성껏 바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