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그리스도의 평화
일상과평범함과부활
이 세가지의 단어는 서로 다르고
다른 뜻이 담겨져 있지만
결코 다르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일상의 삶 속에
평범한 삶 속에서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성대한 전레안에서도
물론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성대한 전례안에서의 부활의 기념은
일상의 삶 안에서 평범한 삶 안에서
부활의 삶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버스를 타고,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 얼마전 손 빨래를 힘들여서 하고
빨래줄에다가 널었습니다.
그런데 물기를 손으로 꽉 안짜서
그런지 무게 때문에 그만 빨래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세탁물은 온통 흙먼지속에 뒹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
하느님께서 섭리하시고,
지켜보시는 하느님이시니
이러한 일을 허락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였고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감사했습니다.
그러한 감사속에서의 기쁨과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몇 년전 서울 명동의 시내 거리를 걷다가
그날은 주일이라 수 많은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저는 자유롭게 가고 싶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 뜻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어쩔때는 앞이나 뒤에서 차가와서
제 걸음을 멈추곤 하였습니다.
저는 답답하고 짜증이나고 화가 났지만
제가 답답해하고 짜증이 난다고 해서
그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에
저의 편암함을 버리고 상황을 받아들이니
불편한 상황에서도 제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보다도 더 자유로운듯 했습니다.
이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태양과 같은 빛이
번쩍이고 수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러한 부활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안에서 만나는 부활인 것입니다.
바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그러한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것에서 찾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공들여서 한 빨래가 떨어졌다고 해서
빨래줄을 탓하기 보다는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사람들이 많아 답답한 길거리를 걸어도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유함과 집착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2독서에서도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상과 평범한 삶 속에서 우리는 진정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뵙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위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참 기쁨을 찾게 되었을 때 우리의 복잡한
내면들은 정리가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참된 기쁨과 평화가
불편한 내면을 잘 정리를 해주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쌋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고
누군가 무덤에서 홈쳐간것이라면
수건과 아마포를 잘 정리해서 놔
두었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 헝컬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수건과
아마포가 깨끗하게
잘 정리해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건과 아마포는
곧 우리의 내면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흐트러지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영적인 것 안에서 찾게 된 부활하신 예수님
과의 만남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잘 정리된 모습, 잘 개켜져 있는
모습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일상과 평범과부활
이 세 단어는 서로 다른 단어 이지만
하나로 이어집니다.
일상과 평범함이 없으면 부활도 없으며
부활이 없으면 일상과 평범함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성대한 전례안에서 예수 부활 대축일에만
부활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과 사건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또한 부활하셨습니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