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과 니코데모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전체 대화를 놓고 보면 니코데모는 늙은이이고,
예수님은 젊은이인데 위아래가 바뀐 관계에서 얘기하는 투입니다.
특히 내일 듣게 되는 니코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더 그러합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도 그런 것을 모르냐?”고 사뭇 질책조입니다.
그래도 니코데모는 다른 유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적대시하거나 젊다고 무시하지 않을뿐더러
자기도 이스라엘 스승인데도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어쩌면 무시당한 것인데도 결코 무시당했다고 생각지 않고,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몰약과 침향을 가져와 정성껏 염습을 합니다.
그러므로 니코데모는 참으로 다른 유대 지도자들과 달리 겸손합니다.
그리고 겸손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스승답게 지혜롭기도 한데
그것은 겸손할 때 진정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유대 지도자들과 달리
땅이나 세상만 보지 않고 하늘을 볼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서 하늘의 표징을 볼 줄 알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임을 아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런 그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함을 말씀하시는데
그가 겸손한 사람이고 그 늙은 나이에도 밤에 찾아와
젊은 예수님께 배우려는 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얘기를 하면 먹혀들 수 있는 상대라고 여긴 표십니다.
새로운 것이 전혀 들어갈 수 없는 늙은이, 고집불통의 늙은이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신식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을 받아들여야 하고,
성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어떻게 성령을 받아들여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내일 더 말씀하실 것이기에 내일을 기대해야겠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굳어지고 꽉 막힌 노인네가 아니라
그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배우려는 열성을 가진 겸손한 니코데모가 오늘 부러운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