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을 일주일도 더 전부터 준비하면서
성령 강림 체험을 이번에는 정말 찐하게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 나는 진정 성령을 받기를 원하는지 자문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성령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령을 받기를 원하지만
주어지면, 하느님께서 주시면 아니 받지는 않겠다는 식입니다.
성령을 모셔야 하는 절실함과 모시고자 하는 간절함이 어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강림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왜 제게 부족할까요?
그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절실함과 간절함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불편한 사람에게 있는 것인데
저는 너무도 많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고 그래서 평안치 않고 평화도 없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과 그 평화를 간절히 원할 텐데
참으로 묘하게도 저는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웬만큼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암도 없고 육체적으로 많이 안 좋은 곳도 없습니다.
제가 해결해야만 할 아주 골치 아픈 일도 없습니다.
지금 안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도 특별히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건강이 있고, 평안이 있고, 평화가 있다는 얘긴데
이 정도면 이 세상에서 아쉬운 것 그리 없고 꽤 행복하다는 얘기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을 거부하지 않고 하느님을 떠나 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이 없으면 불안하기에 언제나 기도를 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
그러기에 썩어빠진 정신(영)도 없지만 기도와 헌신의 영도 제게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하지만 내가 기도하지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맡은 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만 성령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썩어빠진 정신이나 육의 영으로 영접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얼치기 어정쩡한 영으로도 영접할 수 없으며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오직 기도와 헌신의 영으로만 영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모시기 위해 내 편에서 갖춰야 할 영이 기도와 헌신의 영이고,
내 안에 기도와 헌신의 영이 있어야만 성령을 모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와 헌신의 영이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슬기로운 처녀의 등잔 준비에 대한 주님의 비유와 같습니다.
여기서 등잔의 기름은 우리의 기도의 영이고
등잔의 심지는 우리의 헌신의 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름이 없으면 아무리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고,
기름이 있어도 심지가 없으면 역시 불을 붙일 수 없듯이
기도의 영이 없으면 성령을 우리가 영접할 수 없고,
헌신의 영이 없으면 성령은 불타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끄고 안 끄고는 우리 의지에 달렸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불을 끄지 않고 오히려 피우려 해도 불을 꺼트릴 수 있듯이
끄지 않으려는 우리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기도와 헌신의 영이 우리 안에서 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의지뿐 아니라 의식까지 깨어있어야 하고,
의식뿐 아니라 감각까지 깨어있어야 하는 거지요.
모시고픈 갈망,
모시려는 의지,
깨어있는 의식,
깨어있는 감각.
오시는 성령을 위해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