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 베드로 눌라스코에 발현하신 사도 성 베드로(1629)
작 가 : 프란체스코 데 수르바란 (Francesco de Zurbaran)
크 기 : 캠퍼스 유채 179 X 223cm
소재지 :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교황님이 오셔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순교자들의 시복을 주례하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모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기에 더 평가의 여지가 없는 분들이다.
세상엔 선행을 많이 한 사람, 더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살아간 사람들을 성인으로 부르지만, 그리스도교에선 가톨릭과 동방 교회, 성공회에서만 성인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인은 그들의 착한 삶의 영역을 뛰어 넘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돈독했던 데서 성성(聖性)의 의미를 찾고 있다.
독일 개신교 신학자이신 발터 닉 목사는 그의 저서 “성인들의 현상” 이라는 책에서 성인들을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게 사셨던 분”으로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교 성인상의 정곡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스페인 출신으로 일생을 성인, 수도자, 수녀들을 주제로 한 작품과 정물화를 통해 신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 제작에 일생을 바쳤으며, 스페인 영성의 특징인 신비적인 차원을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그는 자연주의 기법을 사용해서 빛과 어둠을 극명히 조화시킴으로 작품에서 영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으며 이것은 작가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성 베드로 눌라스코 성인은 1182년 프랑스 귀족 집안에 태어나서 아버지로부터는 검술과 창술을 익혀 기사로서의 탄탄한 기반을 만들고, 당시 학문의 본거지였던 수도원에서 젊은 시절 교육을 받으면서, 삶의 목표가 세상적인 야망의 실현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에 투신하는 복음적인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의 출세를 목표로 하는 기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영적인 기사에의 열망을 키우게 되었다.
15세 때 부친을 사별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자, 그는 그리스도의 전사(戰士)로서의 자신의 일생을 봉헌하겠다는 결심을 구체화하게 된다.
그는 왕궁을 출입하면서 당시 이슬람들의 노예가 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비참한 참상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이슬람 교도들은 크리스챤 지역을 침략해서 그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았기에 이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노예 시장이 있었다.
자매들은 여러 지역에서 이슬람 교도들의 가정에서 하녀나 가정부로 노예 살이를 해야 했고, 남자들은 이슬람교도 소유의 선박이나 군함에서 노예로서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성인은 이슬람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크리스챤 포로들을 도우기 위해 메르체다리오(Mercedarios)라는 수도회를 창설했는데, 이들은 크리스챤 포로들을 이슬람 교도들의 노예 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베드로 눌라스코 성인은 확실히 그 일에 관해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1218년 8월 1일, 성모님께서 그에게 발현하시어 이슬람의 노예가 된 크리스챤들을 구출하는 수도원을 창설하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당시 이슬람들의 야만적 횡포에 시달리고 있던 크리스챤 포로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수도회에 입회하면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노예 해방이라는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좀 생경스럽던 일이 당시 스페인 사회 여건에선 너무도 현실적이며 실재적으로 복음의 가르침과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도생활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복음의 요청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 수도회는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15:13) 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그 시대 상황에서 너무도 정확히 표현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수도회에 입회했다.
당시 크리스챤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장사를 하던 이슬람 교도들은 자기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미워하는 광신자들이 아니라 그냥 인신매매를 통해서도 돈을 모우고자 하는 인간들이었기에 몸값만 지불하면 아무 조건 없이 자유의 몸이 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수도회원들은 뜻있는 은인들로부터 돈을 희사 받아 몸값을 주고 포로들을 해방시키거나 아니면 비참한 상태에 있는 크리스챤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포로가 됨으로서 그 시대 상황에 적합한 복음적 증거를 했다.
이 장면은 놀라스코 성인이 기도 중에 환시를 보는 장면이다. 어느 날 기도하는 성인 앞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린 성 베드로 사도가 나타나셨다. 성인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 순례에 대한 대단한 열망이 있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였다.
이런 마음을 읽으신 베드로 사도는 성인에게 나타나셔서 로마를 순례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이 시대에 필요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는 수도회를 창설하라는 위로와 권고를 주셨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성인이 그 시대가 필요한 새로운 수도회 창설의 동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한 공간 안에서 베드로 사도와 성인에게만 빛이 쏟아지고 있다.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발현한 베드로 사도를 성인은 깊은 응시의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 너무도 심한 박해를 당하게 되자 잠시 피신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는 중에 아피안(Apian) 가도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베드로 사도는 엉겁결에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질문하자 주님께서 너를 대신해서 순교하기 위해 로마로 간다는 주님 말씀에 너무도 충격을 받아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주님을 배반했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형벌로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다.
벗은 베드로 사도와 흰 수도복을 입은 성인은 단순한 공간에서 빛이 충만한 가운데 계신다.
성인의 주위엔 어두움이 감싸고 있다.
성인이 볼 수 있는 빛은 오로지 베드로 사도 밖에는 없다.
성인은 자연스럽게 베드로 사도를 응시하고 계신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나는 다음 구절을 연상 시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
작가는 당시 상황에서 신앙 때문에 이슬람 교도들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크리스챤 노예들의 해방이라는 가장 예수님 뜻에 맞는 실천을 통해 감동적인 수도생활을 했던 성인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인이란 온전히 하느님께 사로잡혀 하느님의 뜻만을 자기 삶의 최고 규범으로 실천하는 사람임을 알리고 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린 베드로 사도를 응시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은 크리스챤들이 언제나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어디에 살던 삶의 현장에서 바로 그리스도를 응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성인을 감싸고 있는 어둠은 외면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키아로시쿠로(Chiarosicuro)라는 명암법을 창출했던 이태리 화가 카라바죠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어두움으로 차단된 단순한 공간에 베드로 사도와 성인의 등장시킴으로서 신앙에 핵심에 몰두하며 살아야 하는 크리스챤 영성을 너무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어느 수도회의 카리스마이던 그 시대 사회 상황에서 꼭 필요한 복음적인 요청에 대한 응답인데, 현대에 와서 노예 해방이라는 좀 생경스러운 개념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함으로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눌라스코 성인의 생애를 자연스럽게 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