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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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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모님과 아기 예수 곁에 있는 성 안나.(1605- 06)
작 가 : 카라바조(Caravaggio{ 1571- 1610)
크 기 : 292X 211cm : 켐퍼스 유채
소 재 지 : 이태리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교회는 한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를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를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교회로선 좀 이상한 생각이 들 수 있으나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기 위해 따지고 분석하고 단죄하는 관점이 아닌 신앙의 전체성 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너무 순리적이고 자연스러운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성모님의 위상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이미 언급한 대로(성화해설 41번 42번 )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로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는 일방,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는 측근들의 도움으로 이런 잘못들이 무마되면서 끊이지 않는 문제를 만드는 골치 아픈 인물로 살아가던 중 그에게 큰 행운이 닥쳤다.

교황 바오로 5세가 베드로 대성전을 수리하면서 새로 생긴 공간에 그의 작품을 걸기로 하고 제작을 의뢰하신 것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세계 교회의 심장인 베드로 대성전에 남게 된다는 것은 더 없는 영예이기에 그는 흔쾌히 수락하고 심혈을 기울러 단기간에 완성했으나 한 달 가량 성당에 걸리면서 예기치 못한 참담한 반응을 감수해야 했다.

이 작품에 대한 불같은 반대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이 작품이 도상학적으로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과 교황좌가 있는 베드로 대성당에 걸기에 너무 조잡해서 분심 스럽다는 여론에 밀려 철거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여기에서도 반대를 받아 다시 철거되는 수모를 겪은 후 그의 작품의 옹호자이며 교황의 친척인 보르게세(Scipio Borghese) 추기경의 손으로 넘어가 그 가문의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작가는 심혈을 기울인 이 작품이 격렬한 반대와 야유의 표적이 되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실망과 충격 속에서도 작가다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의연히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正道)를 지켜 작품 활동을 계속함으로서 당시 교회가 필요로 했던 신앙 옹호에 중요한 일조를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받았는데 일반 대중과 하급 성직자들은 격렬히 반대한 반면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있는 고위 성직자들은 그의 작품성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후원했기에, 그는 문란한 사생활, 작품을 제작할 때 마다 밀려오는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지조를 지킴으로써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가설이 작가에게 만큼 적중된 사람은 없기에 끝없이 맑고 진실한 천상을 추구하면서도 그의 삶은 진흙 수렁의 심연에서 허덕이며 살았다.

이런 처지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그를 적극 보호하고 감싸며 지낸 것은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그가 지닌 엄청난 천재성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었으며,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서 오늘 그의 작품은 어느 작가 못지않게 감탄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그 시대 교회가 필요했던 호교론적인 요청에 대한 흔쾌한 해답이었다.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교회는 교회 안에 침투하는 개신교 세력을 막는 일방 가톨릭교회 내부의 정화를 시작했는데, 이것을 역사에서는 반종교 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있어 오해나 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했는데, 그중에 중요 쟁점의 하나가 바로 성모님의 중개성이었으며 이것은 다음 성서 구절에 대한 해석이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창세기 3장 15절).

이 작품은 바로 당시 개신교의 등장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성모님의 중개성 교리에 대한 예술가의 명쾌하고 시원한 해답으로 볼 수 있다


m&j.jpg

성모님께서 벌거벗은 예수 아기를 뒤에서 부축하고 계신다. 벗은 모습으로 보아 철저히 어머니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다. 전통적인 성모자의 성화에 등장하던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취해 세상에 오셔서 인간 마리아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있는 “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아들은 그 시대 여느 어린이와 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어머니 마리아의 부축을 받으면서 계신다.

붉은 옷의 성모님은 가슴이 드러난 채 아기 예수를 부축하고 계시는데, 어디를 보아도 과거 성화에서 볼 수 있는 성스러운 모습 보다는 이 나이의 아기를 둔 어머니의 모습이며 드러난 가슴 사이로 보이는 젓 가슴은 모성의 상징이다.

붉은 색깔이 인성의 상징이라면 부풀은 젓 가슴은 아직도 젓 먹이 아들을 둔 어머니의 모습이다. 성모님은 머리에 후광을 얹고 계시나 그 모습은 이 나이의 아이를 둔 여느 젊은 여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작가의 특유한 기법 즉 강한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키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을 사용해서 성모자의 위상을 설명하고 있다. 강한 명암의 대비는 바로크 예술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는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이 기법을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성모님과 예수 아기의 오른 편으로 강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 성모님의 드러난 어깨와 가슴, 벗은 아기 예수님의 오른쪽엔 강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는 표식으로 왼쪽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즉 성모님의 왼쪽 어깨와 예수님의 사타구니 부근엔 그림자의 흔적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성모님을“ 은총이 가득하신 여인”(루카 1, 28)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의 빛을 받아 이 세상에 구세주를 모셔오는 도구로 간택된 복된 여인으로서의 마리아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제외하면 성모님은 너무도 평범한 당시 여인 중 하나였음을 성모님의 평범한 복장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성모님의 영예는 결코 자신의 인격이나 출신과 무관한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택임을 강조하기 위해 성모님의 모습을 여느 젊은 어머니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모님은 후광이 있는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는 예외적으로 후광이 없다. 또한 예수님은 어느 성화에서나 그분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외 없이 표현되고 있는 아래 부분을 가림도 없이 벗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오늘처럼 의복이 흔치 않았던 그 당시 특별한 신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가정의 어린이들은 집안에서 벗은 모습으로 지냈는데, 이 작품의 소년 예수님은 바로 이런 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다른 성화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며 현대적인 시각에서도 대단히 예언적인 표현이다.

교회가 제도화되고 대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권능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극대화되는 것이 “천지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이며 중세기 대성당 앞부분을 장식하는 중요한 주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것은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면이 너무 강조되면서 나자렛 예수의 모습이 퇴색되기 시작했으며, 그리스도의 인생이 뒷전으로 물러나면서 교회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경직된 집단이 되자, 복음적인 생기와 매력을 상실하면서 여러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작가는 대담하게 소년 예수를 벌거벗김으로서 당시에 필요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나자렛 예수의 모습을 제시했으나 문전박대와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나자렛 예수의 면모를 알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 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리 5, 15).


과거 성모자를 그릴 때 아기 예수는 성모님의 아들이기 이전 하느님이심을 강조했고, 특히 동방교회의 이콘에서는 성모님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는 아기가 아니라 어른의 모습으로 그림으로서 (성화해설: 54번) 아기 예수 안에서도 하느님으로서의 신성(神性) 을 강조했는데, 여기엔 후광도 없이 은총이 가득한 여느 어머니의 아들 예수로 나타나고 있다.

아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전적으로 인간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도움이 필요한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이 작품 앞에선 관객들에게 진정한 크리스챤의 모델은 바로 성모님처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임을 제시하고 있다.

동방교회 영성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갈망하는 하느님”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서 크리스챤 영성의 정점은 신인 합일의 경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 예수님 역시 인간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는 너무도 인간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anna.jpg

오른 쪽에서 아기 예수님을 부축하고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는 여인은 성부 안나이다. 그의 머리에는 성모님 처럼 후광을 얹고 있으나 매무새는 성모님과 전혀 다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나 그의 아들 예수는 빛을 받고 있으나, 안나는 빛에서 제외된 암흑의 공간에 서있다.

성모님은 그래도 반듯히 차려 입은 숙녀의 모습인데 비해, 성부 안나는 당시 로마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가난에 찌들린 늙은 아낙네의 모습이다. 모녀의 관계로 보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그런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어둠속에서 서서 밝은 광채 속에 있는 성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비록 성모님이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이지만 여느 인간이 지닌 삶의 고뇌의 현장에서 태어나셨고 사신 분이심의 표현이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부계 족보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조상 중 몇 명을 이방인이나 자랑스럽지 못한 행적을 지닌 여인으로 등장시키고 있는데, 작가는 예수님의 모계 역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여느 인간들처럼 삶의 고뇌 속에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하느님은 바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 위대한 일을 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많은 작가들은 성모님의 영광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도 대단한 모습으로 격상시킨데 비해 작가는 성부 안나의 초라한 모습을 통해 파격적으로 성모님의 가계가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없음을 드러내면서 성모님의 영광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무상의 은혜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기 보다 먼저 임신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의 방문을 받고 성모님이 부르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루카 1, 49)라는 노래의 실상이 바로 초라한 모습의 성부 안나를 통해 증거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성부 안나는 하느님의 간택을 받기 전 성모님의 상징이다

작가의 이런 견해는 당시 성모님을 여신처럼 여기며 받드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것이었고, 받아들이기 불쾌한 것이기에 그의 작품이 성당에서 철거되고 박대를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가장 진실하고 신적인 것은 그것을 표현한 작가의 세대에는 인정을 받기 어려우며 오히려 반대의 표적이 된다는 역사적 진실을 작가는 이 작품 활동을 통해 체험하게 된다.


l.jpg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기 예수님이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뱀의 머리를 밟고 계신다. 뱀은 징그러운 동물이기에 예수 아기에겐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나, 자기를 안고 계신 어머니께 의지해서 뱀을 밟고 계신다.

예수님의 발밑엔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의 발이 뱀을 누르고 있으며, 예수님은 어머니의 이런 도움으로 세상의 악을 무찌르고 인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다.

마리아 역시 여성이기에 뱀에게 접촉한다는 것이 징그럽고 두려운 일이었으나 인류의 구원이라는 당신 아들의 사명 수행에 필요한 것으로 믿었기에 그녀는 두려움 없이 뱀의 머리를 밟으면서 아들을 도와주고 있다.


이것은 오늘까지도 마리아가 크리스챤 신앙 안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파격적 표현이다. 당시 교회는 성모공경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하는 개신교 신학의 공격에 약간 위축되면서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는 성모 공경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깊이 숙고한 후 1560년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즉 성모님의 중개성에 있어 전통적인 교리처럼 성모님이 뱀의 머리를 부수는 여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도움으로 성모님이 이 역할을 하셨다는 절충안으로 문제를 해결코자 했다.

마리아는 은총을 가득히 받긴 했으나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세상의 구원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몫이기에 성모님의 역할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서적 신앙의 표현에 어울리는 것이란 것이 이 결정의 이유였으나 작가는 이것 보다 더 차원 높게 성모님의 위상을 제시하고 있다.

신학은 신앙의 내용을 설명하고 회화는 신앙의 내용을 형상화 하여 보여 줄 수 있음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즉 신학은 설명 과정에서 분리와 구분의 제약을 만드나 예술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신학 표현의 한계성을 넘어 표현 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드러내고 있다.

구원의 중개자로서의 성모님의 역할은 항상 교회 안에서 중요 쟁점이 되어왔다. 성모님의 역할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성모님의 위상이 여신처럼 왜곡되게 마련이며 교회 역사 안에서 항상 이런 지나침의 위험과 실수가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을 어느 신학자와 비길 수 없을 만큼 신앙의 가르침 안에서 인간적인 해석을 함으로서 대단한 걸작을 창출했다. 벌거벗은 아기 예수는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한 여느 어린이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부축을 받고 계신다.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받는 어린이의 처지는 결코 천하거나 그분의 신성에 흠집이 가는것이 아니며, 인간의 모습으로 강생한 예수의 진면모와 지상사명을 더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하느님 사랑의 예표인 어머니 마리아의 사랑에 힘입어 인류 전체의 구원사업을 완성할 구세주의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시지만 마리아의 아들로서의 처신을 통해 성부의 뜻을 이루시는 것처럼 마리아 역시“주님의 여종”(루카 1, 38)으로서 자기의 역할은 바로 인간 예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에 서슴없이 담대한 처신을 하신다.

성모님은 자기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고 의심 없이 믿었지만, 이 진리가 그분의 모성 본능을 위축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없을 만큼 열렬하고 순수했기에, 자기 아들이 해야 할 뱀의 머리를 밟는 어려운 일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셔서 먼저 자기 발로 뱀의 머리를 밟는다.

이것이 하느님 사업에 협조하는 피조물의 모습이며 성모님은 이런 면에서 하느님이 해야 할 일에 관여하는 월권행위가 아닌 하느님을 향한 신앙과 인간 삶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의 표현인 모성의 표현으로 하느님의 뜻에 동참하신다.


성모님의 이런 태도는 예수의 공생활 과정에서도 쉬임 없이 이어지며,(마르코 5, 31- 35) 자기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는 골고타 언덕에 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작품은 아들 예수를 부축하고 그가 밟아야 할 독사의 머리를 먼저 밟고 있는 성모님이 예수의 권위를 침해하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서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한 크리스챤이기 이전에 모성의 성서적 의미성을 알지 못하는 비인격적인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을 보노라면 “하느님의 어머니”, “ 하느님의 아들 예수”, “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는 성모자의 관계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동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신적인 것이요”, 모성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상징이라면 교회 역사 안에서 항상 민감한 부위로 등장하면서 쟁점이 되어온 성모자의 관계성을 너무도 막힘이 없이 시원하고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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