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영광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그 백성의 선조들이 하느님을 깨친 후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를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이 모세였습니다.
모세5경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의 성경은 바로 모세5경이었습니다.
모세5경이란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합니다.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일치시켜주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잘 듣고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이다.”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을 보증해줍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모신 민족이 지상에 또 어디에 있겠느냐?”
“이렇게 율법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지상에 또 어디에 있겠느냐?”
율법의 획일성
그런데 사람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사람은 천양지차를 보입니다.
율법을 획일적으로 똑같이 적용시킬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고,
대학생같이 다 큰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고,
어른들과 같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는 것이지요.
또 같은 어른들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인격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똑같이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여기에 우리 인간의 고민이 있습니다.
똑같이 적용시키자니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무시하는 획일성에 빠지고,
미적미적 거리자니 무질서하게 보이고 어떤 일치감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법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적용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워 걸고넘어진 율법학자들...
정결법이라는 율법을 두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율법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손발을 깨끗이 씻으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걸 안 지키면 질타의 대상이 됩니다.
요즘말로 하면 스캔달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심결에 그런 규정을 무시하고
음식을 먹은 것 같습니다.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은 것 같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일침을 놓습니다.
왜 규정을 지키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예수님은 난처한 상황 속에서
위기를 넘기려고 역공격을 합니다.
너희는 외적인 규정만을 고집하고 있구나...
너희는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지
실제로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자들이다.
너희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위선자들이다.
너희는 사람의 규정을 마치 하느님의 규정인양 둔갑시켜 교리를 만들고
헛되이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진짜 정결법은 외면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다.
손발을 씻으면 정결하게 되는 것이냐?
손발을 움직이는 마음이 정결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너희는 손발만 깨끗하면 그만이라고 하고 있구나.
이 위선자들아,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너희 안에 온갖 탐욕, 온갖 더러운 생각들,
예를 들면 시기, 질투, 미움, 욕심, 중상, 사기, 방탕, 간음, 교만, 악의 등을
깨끗이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쉽게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웃을 비판하고 욕하고 단죄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비판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한다고 비판하고,
남을 흉보고, 깔보고,
남을 얕게 보고, 낮게 보고, 우숩게 보고,
남을 비웃고, 째려보고,
남을 욕하고, 나쁘게 말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려 합니다.
이것부터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남아 있는 한,
정결? 물 건너갑니다.
깨끗? 요원합니다.
되도록이면 남을 이해하고, 존중합시다.
적극적으로 그렇게 합시다.
남을 사랑합시다.
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하나입니다.
나의 분신입니다.
나의 동무입니다.
나의 친구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아멘.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그 백성의 선조들이 하느님을 깨친 후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를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이 모세였습니다.
모세5경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의 성경은 바로 모세5경이었습니다.
모세5경이란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합니다.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일치시켜주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잘 듣고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이다.”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이 모세5경이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을 보증해줍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모신 민족이 지상에 또 어디에 있겠느냐?”
“이렇게 율법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지상에 또 어디에 있겠느냐?”
율법의 획일성
그런데 사람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사람은 천양지차를 보입니다.
율법을 획일적으로 똑같이 적용시킬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고,
대학생같이 다 큰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고,
어른들과 같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윤리가 있는 것이지요.
또 같은 어른들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인격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똑같이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여기에 우리 인간의 고민이 있습니다.
똑같이 적용시키자니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무시하는 획일성에 빠지고,
미적미적 거리자니 무질서하게 보이고 어떤 일치감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법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적용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워 걸고넘어진 율법학자들...
정결법이라는 율법을 두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율법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손발을 깨끗이 씻으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걸 안 지키면 질타의 대상이 됩니다.
요즘말로 하면 스캔달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심결에 그런 규정을 무시하고
음식을 먹은 것 같습니다.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은 것 같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일침을 놓습니다.
왜 규정을 지키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예수님은 난처한 상황 속에서
위기를 넘기려고 역공격을 합니다.
너희는 외적인 규정만을 고집하고 있구나...
너희는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지
실제로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자들이다.
너희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위선자들이다.
너희는 사람의 규정을 마치 하느님의 규정인양 둔갑시켜 교리를 만들고
헛되이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진짜 정결법은 외면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다.
손발을 씻으면 정결하게 되는 것이냐?
손발을 움직이는 마음이 정결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너희는 손발만 깨끗하면 그만이라고 하고 있구나.
이 위선자들아,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너희 안에 온갖 탐욕, 온갖 더러운 생각들,
예를 들면 시기, 질투, 미움, 욕심, 중상, 사기, 방탕, 간음, 교만, 악의 등을
깨끗이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쉽게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웃을 비판하고 욕하고 단죄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비판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한다고 비판하고,
남을 흉보고, 깔보고,
남을 얕게 보고, 낮게 보고, 우숩게 보고,
남을 비웃고, 째려보고,
남을 욕하고, 나쁘게 말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려 합니다.
이것부터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남아 있는 한,
정결? 물 건너갑니다.
깨끗? 요원합니다.
되도록이면 남을 이해하고, 존중합시다.
적극적으로 그렇게 합시다.
남을 사랑합시다.
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하나입니다.
나의 분신입니다.
나의 동무입니다.
나의 친구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