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신묘한 출발
한국천주교회는 18세기 말
실학파 지성인들의 학문적 연구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섯 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벽(요한), 이승훈(베드로), 권일신(프.사베리오), 권철신(암브로시오), 정약종(아오스딩)...
이분들은 학문으로 접근하다가
나중에는 신앙적 실천으로 급전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게 없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대목입니다.
드디어 1784년 이승훈 성조가 중국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천주교회가 싹텄습니다.
자생적으로...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직접 교회가 싹튼 것입니다.
이를 어찌 설명할까요?
이를 신묘하다고밖에....
이를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오묘하고 신묘한 섭리입니다.
출발도 신묘했지만,
천주교회가 커가는 과정도 신묘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제 포교생활과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할려는 찰나에
기존의 종교인 유학, 유교와 부딪히고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유교는 천주교를 이단시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종교”다,
“인륜을 저버리고 천륜을 저버린 사이비 종교다”라고 단정 짓고 박해를 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조상제사였습니다.
당시 천주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 역시 편협하고 교만한 자세였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당시 로마는 다른 나라의 문화, 종교를 한 마디로 무시했습니다.
선교사들을 예수의 유일성으로 무장시켜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천주교 유일 문화 하나만을 고집하며 획일적으로 침입을 했다고나 할까요...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단정 지었습니다.
유교의 입장에서는 조상제사를 금하는 천주교를,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사악한 사이비 종교로 단정 지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여서
유교에 반대되는 천주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못 믿게 하였고, 금하였고, 뿌리채 뽑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을 모두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죽이게 했습니다.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박해, 학살, 살인이 감행되었습니다.
천주교인 체포, 감금, 옥살이, 고문, 처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가작통법에, 재산몰수에,
가문이나 족보에서 제거하기에 이르렀고,
수세에 몰린 천주교도들은 산 속으로 피신, 은둔하게 되었고,
도망 다니게 되었고, 쫓겨다니는 불행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큰 박해가 다섯 번 있었습니다.
1791년 신해년 박해, 1801년 신유년 박해, 1839년 기해년 박해,
1846년 병오년 박해, 1866년 병인년 박해....
100여 년간이나 박해를 혹독히 받았습니다.
그러니 천주교도들이 어디에 남아있겠습니까?
조선 사회에서는 없어진 겁니다.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지요.
인원도 얼마 안 되는 분들이 모두 지하로...숨었습니다.
깊은 산골로 들어가 천주신앙을 실천하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지
지금도 목이 매입니다.
살던 고향을 떠나고,
집안의 재산을 다 빼앗기고,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산골짜기로...
숨어 숨어서,
꼭꼭 숨어서...
천주 신앙을 지키려 했으니....
아고~~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가련합니까?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인간 세계와 끊고...
모든 교류를 끊어버리고...
어찌 산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단 말입니까...?
저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성인전을 읽으면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읽어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그냥 엉엉 울고 맙니다.
콧등이 시큼해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어둡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
밝은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밝은 대명천지가 어디서 오려나....?
어디서 구원이 오려나...?
이때 프랑스 파리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옵니다.
조선의 천주교도들에게 그들은 참으로 구세주였습니다.
바로 구세주였습니다...!!
주교님, 신부님들이 들어오신 겁니다.
그분들도 조선에서 입국을 금하기 때문에
몰래 숨어들어왔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목숨을 모두 내어놓고 그런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분들의 영향으로 나중에 프랑스는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고
선교활동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드디어 밝은 대명천지가 도래한 것입니다.
파리 외방 선교사들이 아무 댓가 없이 오로지 하느님 신앙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목숨을 걸고
조선을 위해서 입국하였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파리외방선교사들께 감사!!
이제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힘을 얻고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참으로 신묘한 것은
천주교를 믿으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는데도
어떻게 그걸 감수하고 신앙을 간직했느냐 하는 겁니다.
또 발각되어 체포되어 감금되고 고문을 받고, 심지어는 처형되는 상황인데
어찌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순교의 빨마를 얻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출발도 신묘하지만
성장 과정도 들여다보면 참으로 신묘합니다.
100여 년간 순교하신 분들이 10,000여 명이라고 합니다.
무명 순교자의 줄 무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서울 절두산 순교지는 머리를 칼로 절단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때 물든 피가 한강을 타고 유유히 흘러 사라졌습니다.
그 피가 향기로운 제사가 되어
이제 한국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성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참으로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민족입니다.
우리 심성이 그렇습니다.
순교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순교의 씨앗이 온 산하, 온 국토에 뿌려져서
현재 신앙인들이 곳곳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10,000여 명 중에서 103위가 성인의 반열에 드셨고,
지금 시성시복 작업, 시성시복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내년에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랍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이 부끄럽지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죄송스럽고 송구스럽지요?
그렇습니다.
선조들 얼굴 보기 미안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걸 제대로 깨쳐야 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를 제대로 깨쳐야 합니다.
출발은 이런 자기 인식에서부터입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되겠지요?
맞습니다.
헛군데에 정신을 쓰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습니다.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정신이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진리스러운 것에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헛군데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오늘도 마약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도박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경마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알콜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인터넷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게임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바다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빠찡코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정신이 깨어있어야 되고,
정신이 건강해야 되고,
정신이 순수하고 맑아야 되겠지요...?
맞습니다.
한국의 순교성인 대축일,
이 영광스럽게 자랑스러운 대축일에
우리의 정신을 똑바로 차립시다.
오늘 우리는 좋아라 춤을 추고, 기뻐 용약하고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성인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도록 결심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저희에게 맑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고 깨어있고 살아있는 정신을 갖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한국천주교회는 18세기 말
실학파 지성인들의 학문적 연구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섯 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벽(요한), 이승훈(베드로), 권일신(프.사베리오), 권철신(암브로시오), 정약종(아오스딩)...
이분들은 학문으로 접근하다가
나중에는 신앙적 실천으로 급전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게 없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대목입니다.
드디어 1784년 이승훈 성조가 중국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천주교회가 싹텄습니다.
자생적으로...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직접 교회가 싹튼 것입니다.
이를 어찌 설명할까요?
이를 신묘하다고밖에....
이를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오묘하고 신묘한 섭리입니다.
출발도 신묘했지만,
천주교회가 커가는 과정도 신묘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제 포교생활과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할려는 찰나에
기존의 종교인 유학, 유교와 부딪히고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유교는 천주교를 이단시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종교”다,
“인륜을 저버리고 천륜을 저버린 사이비 종교다”라고 단정 짓고 박해를 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조상제사였습니다.
당시 천주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 역시 편협하고 교만한 자세였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당시 로마는 다른 나라의 문화, 종교를 한 마디로 무시했습니다.
선교사들을 예수의 유일성으로 무장시켜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천주교 유일 문화 하나만을 고집하며 획일적으로 침입을 했다고나 할까요...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단정 지었습니다.
유교의 입장에서는 조상제사를 금하는 천주교를,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사악한 사이비 종교로 단정 지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여서
유교에 반대되는 천주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못 믿게 하였고, 금하였고, 뿌리채 뽑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을 모두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죽이게 했습니다.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박해, 학살, 살인이 감행되었습니다.
천주교인 체포, 감금, 옥살이, 고문, 처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가작통법에, 재산몰수에,
가문이나 족보에서 제거하기에 이르렀고,
수세에 몰린 천주교도들은 산 속으로 피신, 은둔하게 되었고,
도망 다니게 되었고, 쫓겨다니는 불행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큰 박해가 다섯 번 있었습니다.
1791년 신해년 박해, 1801년 신유년 박해, 1839년 기해년 박해,
1846년 병오년 박해, 1866년 병인년 박해....
100여 년간이나 박해를 혹독히 받았습니다.
그러니 천주교도들이 어디에 남아있겠습니까?
조선 사회에서는 없어진 겁니다.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지요.
인원도 얼마 안 되는 분들이 모두 지하로...숨었습니다.
깊은 산골로 들어가 천주신앙을 실천하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지
지금도 목이 매입니다.
살던 고향을 떠나고,
집안의 재산을 다 빼앗기고,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산골짜기로...
숨어 숨어서,
꼭꼭 숨어서...
천주 신앙을 지키려 했으니....
아고~~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가련합니까?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인간 세계와 끊고...
모든 교류를 끊어버리고...
어찌 산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단 말입니까...?
저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성인전을 읽으면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읽어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그냥 엉엉 울고 맙니다.
콧등이 시큼해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어둡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
밝은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밝은 대명천지가 어디서 오려나....?
어디서 구원이 오려나...?
이때 프랑스 파리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옵니다.
조선의 천주교도들에게 그들은 참으로 구세주였습니다.
바로 구세주였습니다...!!
주교님, 신부님들이 들어오신 겁니다.
그분들도 조선에서 입국을 금하기 때문에
몰래 숨어들어왔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목숨을 모두 내어놓고 그런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분들의 영향으로 나중에 프랑스는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고
선교활동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드디어 밝은 대명천지가 도래한 것입니다.
파리 외방 선교사들이 아무 댓가 없이 오로지 하느님 신앙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목숨을 걸고
조선을 위해서 입국하였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파리외방선교사들께 감사!!
이제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힘을 얻고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참으로 신묘한 것은
천주교를 믿으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는데도
어떻게 그걸 감수하고 신앙을 간직했느냐 하는 겁니다.
또 발각되어 체포되어 감금되고 고문을 받고, 심지어는 처형되는 상황인데
어찌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순교의 빨마를 얻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출발도 신묘하지만
성장 과정도 들여다보면 참으로 신묘합니다.
100여 년간 순교하신 분들이 10,000여 명이라고 합니다.
무명 순교자의 줄 무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서울 절두산 순교지는 머리를 칼로 절단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때 물든 피가 한강을 타고 유유히 흘러 사라졌습니다.
그 피가 향기로운 제사가 되어
이제 한국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성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참으로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민족입니다.
우리 심성이 그렇습니다.
순교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순교의 씨앗이 온 산하, 온 국토에 뿌려져서
현재 신앙인들이 곳곳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신앙생활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10,000여 명 중에서 103위가 성인의 반열에 드셨고,
지금 시성시복 작업, 시성시복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내년에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랍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이 부끄럽지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죄송스럽고 송구스럽지요?
그렇습니다.
선조들 얼굴 보기 미안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걸 제대로 깨쳐야 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를 제대로 깨쳐야 합니다.
출발은 이런 자기 인식에서부터입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되겠지요?
맞습니다.
헛군데에 정신을 쓰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습니다.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정신이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진리스러운 것에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헛군데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오늘도 마약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도박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경마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알콜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인터넷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게임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바다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오늘도 빠찡코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신이 살아있어야 되고,
정신이 깨어있어야 되고,
정신이 건강해야 되고,
정신이 순수하고 맑아야 되겠지요...?
맞습니다.
한국의 순교성인 대축일,
이 영광스럽게 자랑스러운 대축일에
우리의 정신을 똑바로 차립시다.
오늘 우리는 좋아라 춤을 추고, 기뻐 용약하고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성인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도록 결심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저희에게 맑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고 깨어있고 살아있는 정신을 갖도록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