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
사람들은 영생을 꿈꿉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후의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두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늙어 죽지만, 나의 자식이 내 뒤를 이어 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닐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여 자식이 없으면 큰일로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생을 제사지내주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사는 남자가 지내니까 남자아이를 낳으면 영광이요 축복이지만,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면 큰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영생을 현생 이후에 오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영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영생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하신 선생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 말씀: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걸 지키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후 예수님은 바로 십계명을 열거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질문한 사람은 실망합니다.
아니, 그런 것은 제가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지켜온 것들입니다.
그렇게 쉬운 것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비책이 되겠습니까?
그건 누구라도 지키는 것들이 아닙니까?
그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을 텐데요.
그걸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 좀더 어렵고 힘든 그 무엇을 알려주십시오.
사람은 쉽고 평범한 길이 있는데도 그걸 거부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려 합니다.
남들이 못하는 어떤 특수한 비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평상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우숩게 여기고 다른 길을 찾습니다.
도인이 되고, 도사가 되고, 성인이 되는 길이
어떤 특수한 길을 밟아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사가 되기 위해서 소림사의 무예처럼 산속으로 들어가
십년공부를 해야 하는 줄로 압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 유대인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슨 특수한 과정과 비결이 있는 줄로 알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십계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너무 평범한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다른 것을 기대합니다.
다른 비책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은 젊은 유대인을 마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드디어 비수를 꺼냅니다.
그래, 알았다.
특수한 그 무엇을 기대하는구먼.
그렇다면, 여보게 젊은이, 영생을 얻으려면 말이야,
십계명 가지고는 안 되지...
내가 지금부터 비책을 말해 줄 테니 잘 듣게나...
자,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재산을 다 팔아야 하네.
그리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네.
그런 다음 나를 따라야 하네.
다시 말하겠네.
첫째, 재산을 다 팔아야 하고,
둘째, 그 재산을 다 나누어주어야 하고,
셋째, 나를 따라야 하네.
무슨 말인 줄 알겠나? 어떤가? 할 만 하나? 그렇게 하겠나?
영생이 어디 쉬운 줄 아는가?
이만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걸세. 영생은 굉장히 어려운 것일세.
자, 어떻게 하겠나?
복음서에 의하면 그 젊은 유대인은 금방 시무룩해졌다고 합니다.
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슬퍼하며 그냥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넘어가는 것이기에 따를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하느님 계명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둘째, 재산이 영생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순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시고 바라실까?
대개 신학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아들아, 딸아,
먼저, 생로병사의 깊은 의미를 알아듣고 순응하거라.
다음, 네 마음속에 숨어있는 빛을 밝히거라.
다음, 네 탐욕을 절제하거라.
그러면 어두웠던 네가 밝아지고 환해져서
무엇을 하던지 기쁘고 밝고 행복하고
어디를 가든지 편안하고 대환영이니라.
사람들은 영생을 꿈꿉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후의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두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늙어 죽지만, 나의 자식이 내 뒤를 이어 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닐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여 자식이 없으면 큰일로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생을 제사지내주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사는 남자가 지내니까 남자아이를 낳으면 영광이요 축복이지만,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면 큰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영생을 현생 이후에 오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영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영생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하신 선생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 말씀: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걸 지키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후 예수님은 바로 십계명을 열거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질문한 사람은 실망합니다.
아니, 그런 것은 제가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지켜온 것들입니다.
그렇게 쉬운 것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비책이 되겠습니까?
그건 누구라도 지키는 것들이 아닙니까?
그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을 텐데요.
그걸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 좀더 어렵고 힘든 그 무엇을 알려주십시오.
사람은 쉽고 평범한 길이 있는데도 그걸 거부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려 합니다.
남들이 못하는 어떤 특수한 비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평상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우숩게 여기고 다른 길을 찾습니다.
도인이 되고, 도사가 되고, 성인이 되는 길이
어떤 특수한 길을 밟아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사가 되기 위해서 소림사의 무예처럼 산속으로 들어가
십년공부를 해야 하는 줄로 압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 유대인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슨 특수한 과정과 비결이 있는 줄로 알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십계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너무 평범한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다른 것을 기대합니다.
다른 비책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은 젊은 유대인을 마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드디어 비수를 꺼냅니다.
그래, 알았다.
특수한 그 무엇을 기대하는구먼.
그렇다면, 여보게 젊은이, 영생을 얻으려면 말이야,
십계명 가지고는 안 되지...
내가 지금부터 비책을 말해 줄 테니 잘 듣게나...
자,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재산을 다 팔아야 하네.
그리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네.
그런 다음 나를 따라야 하네.
다시 말하겠네.
첫째, 재산을 다 팔아야 하고,
둘째, 그 재산을 다 나누어주어야 하고,
셋째, 나를 따라야 하네.
무슨 말인 줄 알겠나? 어떤가? 할 만 하나? 그렇게 하겠나?
영생이 어디 쉬운 줄 아는가?
이만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걸세. 영생은 굉장히 어려운 것일세.
자, 어떻게 하겠나?
복음서에 의하면 그 젊은 유대인은 금방 시무룩해졌다고 합니다.
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슬퍼하며 그냥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넘어가는 것이기에 따를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하느님 계명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둘째, 재산이 영생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순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시고 바라실까?
대개 신학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아들아, 딸아,
먼저, 생로병사의 깊은 의미를 알아듣고 순응하거라.
다음, 네 마음속에 숨어있는 빛을 밝히거라.
다음, 네 탐욕을 절제하거라.
그러면 어두웠던 네가 밝아지고 환해져서
무엇을 하던지 기쁘고 밝고 행복하고
어디를 가든지 편안하고 대환영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