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형제들이 광화문에서 단식을 시작한다.
진실을 희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그 고통에 함께 하면서, 진실을 위한 그 목소리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희망하는 그 요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
그것은 그 누군가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고,
그 누군가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약점, 나의 잘못,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고,
아니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며,
피하고 싶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없이 추락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 앞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 그것은 많은 위험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육체적인 목숨보다, 사회적인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관점에서
나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사회적인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괜찮다..
사회적인 목숨을 버려도 괜찮다.
약점을 드러냄으로 해서 한 없이 추락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물론 추락을 경험하겠지만,
그 추락 후에는 비상이 있다.
진실을 드러내면서 고통을 받겠지만,
고통 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올 것이다.
그 기쁨은 인간이 줄 수 없는 기쁨이며,
그 비상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한 비상이다.
하지만..
고통 후에 기쁨이 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고통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선택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 그 자체가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반면 진실을 숨기면서 오는 고통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 괴로움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두려움, 괴로움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영혼은 병들어 간다.
불쌍하다.. 그 영혼들이..
나는 오늘부터, 광화문 거리에 나 앉을 우리 형제들을 기억하면서,
또한 그 불쌍한 영혼들, 병들어 가면서도, 병들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그 영혼들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하느님은, 마술도 아니고, 자신의 전능한 힘도 아니고,
십자가의 그 무력한, 그 엄청난 고통을 통해서 부활이라는 그 엄청난 기쁨으로 나아가셨고,
그러한 방식으로, 즉, 고통을 통한 기쁨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다.
무너져도 괜찮다. 넘어져도 괜찮다.
이 높은 곳 뿐만 아니라, 저 낮은 곳, 우리가 넘어져서 일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그 곳에도,
하느님은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저 낮은 곳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를 위해 나 오늘부터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