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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온 누리에 평화

 

지난 5월에 8명의 형제들과 함께 '도보 피정'을 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특히 20여년간 찍어온 사진 중에, 그때 앵글에 들어온 '다랑논'의 정취가 지워지지 않으니,

이참에 '다랑논'에 관한 소묘라고나 할까요, 그 정취를 글에 담아보는 것도 썩 괜찮을 듯 싶어

여기 글을 올려 봅니다.

 

사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인월에서 성심원으로 가던 1/3 지점-  언덕배기의 논들을 대하면서도, 정작

그런것이 '다랑논'이라고 하는 것 조차  몰랐었지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아닌 서울 태생이니 그런 이름을 알리가 없었구요.

처음 대하였을 적에 그냥 눈 앞에 전개된 논을 제 잣대로,

"'계단식논'이 참으로 안온함을 주네.  그리고 마침 비가 살짝 내린 뒤라 논 배후로 펼쳐져 흘러가는 낮은 구름과

조화를 이룬 논배미들이 참으로 멋진 풍경을 창출하고 있네!"라고 중얼거리며서,

순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찰칵했던 것이죠.

 

그 다랑논의 사진을 가끔 들여다 보면,

제 뇌리에 여러가지 정서들이 떠오르는 것이겠죠?  그런 상념들을 두서없이 글에 올려보는 것도 한국적인 고유 산야의

쏠쏠한 풍광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우선 크고 작은 다랑논이면서도, 가난한 시골 집의 올망졸망한 애들의 모습처럼 어쩜 그리도 우애 깊어 보였는지요!

그리고 정갈하게 펼쳐진 그 논들의 배후엔 가난하면서도 부지런한 농부들의 진한 인기척을 아니 느낄 수가 없는 것이려니,

늘상 허리를 굽혀 논을 돌보는 농부들의 일상이 확연히 보일 것만 같아, 가족들을 위한 그 헌신과 노고가 담뿍 배어 있을

거룩한 공간임을 무시할 수가 없는 거지요.

우리가 도보 피정을 했을 때가 5월이었으니,모내기를 막 끝낸 뒤라선지 그 어린 모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더없이 정갈해 보였습니다.

골짜기의 흐르는 물을 허실없이 가두려고 터지지 않게 질흙으로 잘 싸바른 논둑의 가래질 역시

늘 허리굽혀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차라리 성사스럽게 까지 여겨졌으니까요.

 

사계절에 따라 다랑논의 이야기도 색달라지겠지요?

벼이삭은 아마도 태양,물, 공기...등, 농부의 피땀어림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을 자양분 삼았으리라 봅니다.

한창 벼가 자라고 익어갈 무렵이면 뻐구기는 물론 산비둘기의 구구 소리...등의 시골스러움들을 고스란히 친구처럼 벗삼아

자랐을 테니, 다랑논의 정서는 그야말로 알알이 벼이삭마다 그런 아름다움으로 자랐을 겁니다.

 

추수가 끝난 겨울이면,

다랑논 특유의 빈 공간이라는 쓸쓸함보다는 삼계절 농부의 노고 후에 하늘하늘 찾아 올 하이얀 눈과 더불어

한껏 누리는 쉽의 터일테니...그 역시 하릴없는 그냥 빈 공간이 아니라 한바탕 타작마당 후의 한 폭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득해지는  걸요.  그리고 가난한 농부네 오두막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궁이와 햇밥을 기다리며 둘러앉아 있을 가난하지만 정겨운 애들의 모습...이런 것보다 더 아름다운 한국의 정서가 또 있을까 싶네요.

 

가을 문턱에 들어선 추석을 앞둔 지금쯤, 저 다랑논의 익어가는 샛노란 벼이삭이며 고개숙인 겸허의 자태를 대하면

봄, 여름에 느끼는 것과 또 다른 황금색 결실로 그동안 많았던 수고로움에 시름조차 가질 새 없던 농부의 가슴에

한아름 뿌듯함이 안겨지겠지요.

 

저는 시골 사람이 아니면서도 스쳐 지나간 다랑논에서 이런 것들을 한껏 느끼는 걸 보면,

아마도 저의 피엔 시골 조상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게 아닐 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리고 행복이나 불행을 이야기 할 때,

이러저런 구차스러운 행불행을 논하기보다는 '다랑논'과 같은 소박한 시골 이야기가 가득 담긴,

욕심없으면서도 부지런히 다랑논을 부치는 농부의 일손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요.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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