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다.”
이번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에는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을 생각합니다.
이들이 성모 마리아이고,
성모 마리아가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저 대신 이들을 위로해주시고
같이 아파해주실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들의 아픔을 많이 동감하지 못합니다.
지난 달 제가 수련자들과 함께 이들의 단식에 동조단식을 하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은 제가 진정 같이 아파서 한 게 아니라
면피를 위해서 한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한계이고, 약점이고, 괴로움입니다.
핑계를 대자면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특히 아파하는 사람과 일체화나 동일화를 이루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기 아이를 10달이나 품고 키우며 아이의 모든 것이 나에게 달리고,
나도 아이의 곁을 24시간 떠나지 않는 일체화 경험을 한 어머니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다른 사람과의 일체화를 잘 이룰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이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은 자라지 않고 갈수록 제가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진정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겸손해진 것이 아니라 교만해졌던 것입니다.
교만은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은 떨어지게 하고,
자기 아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하지요.
그리고 교만하면 할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서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지만
누가 자기의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펄펄 날뜁니다.
이런 저에게 성모 마리아는 성을 초월한 모범입니다.
제가 비록 남자이지만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아보고 싶고, 젖까지 물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 저의 공감능력이 커지고 일체화가 가능해지면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수난(Passion)을 같이 느끼고(Compassion)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처럼 수없이 많은 다른 아픈 사람들을 모두
당신 아들과 딸로 삼아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 바람을 갖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모 마리아의 겸손을 닮고자 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겠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다고 하시며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을 지극히 겸손하게 낮추셨고,
우리의 주님께서는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이를 내 어머니라고 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어머니로 초대하시고 어머니 삼아주셨으니 말입니다.
겸손할수록 커지는 공감 능력과
겸손할수록 더 커지는 거룩한 품위의식을
우리는 오늘 성모 통고 축일에 성모 마리아께 배웁니다.
그리고 저보다 훨씬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여러분들은
부디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잊지 말고 같이 아파해주시고,
세월호 특별법이 하루 빨리 통과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