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이트 뒤러 제목 : 삼왕의 경배 ( 1505년)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1471- 1528)
크기 : 목판 유채화 100X 124cm
소재지 : 이태리 피렌체 우피치(Uffici) 미술관
신앙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현실 안에서 드러나고 있다.
니케아 신앙 고백처럼 "한 분이시며 주님이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는 크게 로마 가톨릭 , 동방 교회, 여러 파의 개신교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자랑스럽지 않은 다양한 분열의 근본 책임은 주님으로부터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의 모습을 보이라는 분부를 받은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실책과 여러 부패에 원인을 돌려야 한다.
이 작품은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극치를 보이던 이태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독일의 르네상스 예술의 대표로 평가되는 작품이며 작가의 활동 당시는 말틴 루터로 시작된 종교 개혁이 분열로 이어지면서 야기된 혼란스러움을 가장 잘 극복하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 가운데서 작품을 통해 신앙의 중용성을 지킨 작품이라는 면에서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교황과 메디치 가문, 최고를 추구하던 베네치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독일의 예술을 국제 수준으로 격상시켰기에 최근의 런던 국립 박물관은 그를 " 유럽 최초의 국제 화가"로 평가했는데 이는 정확한 평가이며 독일인들은 그가 활동했던 1500년대를 "듀러의 시대"라고 평가할 만큼 이 작가를 독일 예술 자부심의 상징으로 평가하고 있다.
원래 헝가리 출신으로서 금은 세공업에 종사하던 그의 부모들은 상업의 발달로 번영을 이루고 있던 독일의 뉘런베르그로 옮기게 되고 작가는 이곳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전파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은 셈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안톤 코베르커(1445- 1513)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능력을 인정받던 금은 세공사로서 뉘런베르그를 중심으로 유럽의 큰 도시에 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스승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그는 유럽의 예술가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를 위시해서 네델란드를 여행하면서 당시 최고 기법과 국제성을 익히게 되었다.
그는 당시 작가로서는 드물게 국제성을 익힘으로서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신앙을 표현해야 했던 성 미술에 있어 어느 지역 정서나 작가의 개인 취향을 극복한 작품 제작을 통해 크리스챤 신앙의 보편적 성격을 표현 할 수 있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는 성모
이 내용은 예수 성탄 사화 중 정감 있는 부분인 다음 부분을 그린 것이며 ,많은 작가들이 오늘날 성탄 구유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예수 성탄, 목동의 경배와 함께 표현했으나 작가는 이것을 별도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다음 성서에 나오는 것과 외경에서 전해지던 삼왕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 예수님께서 헤로데 임금 때에 유대 베틀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크게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들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물어 보았다.'
.............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 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오 2: 1-5; 9- 11)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이 내용은 실은 주님 성탄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즉 주님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선민의식을 충족시켜 줄 존재로 여겼던 편협한 유대인의 구세주가 아닌 온 세상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주님 성탄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자들의 호기심은 이 박사들이 오늘날 페르시아에서 온 학자들이며 그들의 이름은 멜키올, 발다샬 이라는 것까지 거론하면서 자기중심의 메시아 신앙을 만민을 위한 신앙으로 격상시킨 이 사건에 대해 대단한 공경심을 가졌다
이런 면에서 오늘 날 동방 교회가 공현축일을 성탄으로 지내는 것은 신학적인 깊이가 있는 성탄 신심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성모님은 다른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신성과 인성의 상징인 붉은색과 푸른색이 아닌 짙은 청색의 옷에다 흰 머리 수건을 쓰고 계신다.
구세주를 만난 동방박사 중 가장 나이가 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를 보여주자, 그는 너무도 감동해서 자기 나이도 잊고 이 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최상의 공경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선물로 가지고 온 황금 상자를 바치자, 아기 예수님은 아기 답지 않는 모습으로 그것을 넙죽 받으신다.
인간 봉헌의 상징인 이 선물을 받으시는 아기 예수님의 의연한 모습은 그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고 모든 인간들은 그의 신분이나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다 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박사들은 서서 이 감동적인 광경을 응시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왕들이 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과 달리 두 명은 이 감격적인 장면을 응시함으로서 관객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김으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모시는 역할을 하신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진리를 찾는 인간의 상징인 가장 나이가 많은 박사에게 시선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다른 선물을 들고 서 있는 왕의 옷은 대단히 화려하다.
당시 최고급 수준의 비단에다 그의 몸에 걸친 장신구 역시 최고급이다.
이것은 작가의 집안이 금은 세공업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익힌 고귀함의 표현이며 아기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의 공경을 받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그는 당시 북 유럽 전통과 이태리에서 유행하며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만택냐(Mantegna의 기법을 자연스럽게 조화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려한 옷차림으로 선물을 들고 서있는 그 준수한 박사는 바로 작가가 자신을 그린 것이다.
중세기 작가들은 작품 안에 어떤 인물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작가 역시 익살스럽게도 현명하고 거룩한 박사의 모습에 자신을 투사한 것은 엉뚱한 교만이 아니라,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신의 신앙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예물을 들고 서 있는 동방박사 중 흑인이 있다.
당시 흑인은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유럽 왕실이나 귀족 집안의 노예로 일하던 처지였다.
한마디로 하층민 노예의 상징이었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간혹 삼왕 중 흑인이 등장하기는 하나 그 용모는 백인으로 만들어 온 세상 사람이 주님을 구세주로 경배했다는 상징을 드러내는 정도였으나 작가는 대담하게도 온전히 원주민 모습의 흑인을 동방박사의 하나로 등장시키고 있다.
현대에서 인류 평등의 가장 큰 쾌재라면 흑인인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뽑힌 것이다. 백 여년 전 미국의 노예로 끌려온 흑인의 후손이 백인의 지도자로 뽑힌 것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작가는 바로 이 작품에서 오늘 우리가 오바마의 당선에서 느끼는 예언적인 기쁨을 전하고 있다.
천민과 노예의 상징인 흑인을 진리를 찾는 인간의 이상형 중에 포함시키면서 그의 복장 역시 너무도 화려하고 준수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 표현을 통해 흑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층민이지만 하느님의 눈엔 사랑스런 아들의 하나임을 당당히 증거하고 있다.
노예의 상징이었던 흑인을 자기 작품에서 최고의 인격자로 표현한 그의 복음적 용기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아직 우리에겐 극복해야 할 황인종의 열등감이 있다.
흰 것은 선과 고귀함의 상징이요 그러기에 백인은 다 문화인이요 교양과 양심을 겸비한 사람이나, 검은 것은 낮음과 천함의 상징이며 그러기에 흑인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그리 존경스럽지도 달갑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국에 즐비한 영어학원의 원어민 교사의 인기 순위는 첫째가 백인이고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리 달갑지 않는 선생은 흑인이라는 황인종의 편견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작가는 이 대담하게 표현된 흑인 박사를 통해 우리의 편견과 열등감을 깨트릴 것을 요청하고 있다.
주변의 풍경들
작가는 성모자와 동방 박사와 함께 주위 풍경과 자연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항상 성탄 말구유에 등장하는 동물 외에 작가는 그리스도의 상징인 사슴과 질경이 꽃, 기타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을 그림으로서 피렌체의 봇티첼리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봄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또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변화된 생명이 넘치는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활동하던 도시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개신교 도시로 변하게 되고 작가 역시 개신교 신자가 된다.
"그 지역에 그 종교: Cujus regio, cujus religio"라는 격언대로 그곳 정치 지도자에 의해 국민들의 종교가 선택되는 관례가 많았다.
말틴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함께 성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유물에 대한 지나친 공경을 표시하는 것을 비판하긴 했으나, 성미술이 복음 선포의 주요 수단이었음을 인정했기에 광신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기에, 작가는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 땅의 많은 개신교도들이 성미술을 우상숭배로 치부하며 광기를 띄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 시대의 개신교나 개신교의 원조로 여기는 말틴 루터의 성미술에 대한 이성적 이해는 오늘 우리 처지에서 많은 것을 반성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의 광기 중에 가장 비참하고 추악한 광기(狂氣)는 바로 종교의 광기인데,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교회는 신앙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종교 재판이란 광기를, 개신교는 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표시로 많은 성미술을 파괴한 광기를 범했는데, 개신교 신자로서도 이런 광기에 빠지지 않았던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이성적 신앙의 태도는 세계에서 드물게 광기를 띄고 있는 우리 종교계에 많은 반성의 계기를 주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독일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으면서 실세였던 삭소니아 공국의 프레드리히 현자의 개인 기도용으로 제작된 것인데, 작가 하인리희 뒤블린은 이는 "독일 예술의 명쾌성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란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건 믿을 수 있겠는데 예수님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그런데 제 대답이 참...궁했습니다.
체험의 신앙을 아직 저도 갖지 못했나 생각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