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적의 고기잡이 ((1443)
작가 :콘라드 비츠(Konrad Witz: 1400- 1445)
크기 : 목판 템페라 :154X 132cm
소재지 :스위스 제네바 예술 박물관
성화가 일반 회화와 다른 구분점은 풍경이나 배경 표현에서 찾을 수가 있다.
일반 회화는 풍경 묘사를 자연스럽게 했으나, 성화는 등장 인물에 초점을 맞추면서 배경은 금빛이나 후광으로 장식하여 주인공의 성덕에만 관심이 쏠리게 인도했다.
한마디로 풍경이라는 지상 세계의 모습은 성덕이라는 천상의 표현에서 별로 중요치 않는 요소로 생각했다.
독일 출신으로 스위스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는 이런 풍토에서 성화에 새로운 기법을 도입했다.
스위스는 당시 산악지대여서 이렇다 할 농사도 없기에 남정네들이 주로 해외 전쟁에 용병으로 나가 돈을 벌어들이던 가난한 곳이었으나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바젤(Bazel)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자 , 경제가 발전하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오늘날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개최지역의 경제력을 키우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그러면서 이웃 네덜란드나 프랑스 이태리를 통해 유럽의 고급 예술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이런 경제성장의 시기에 제네바 주교가 부탁한 대성당 제단화의 일부 이다.
내용은 요한 복음 21장 "주님의 도움으로 고기를 많이 잡은 제자들의 기적 이야기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삶의 현장이셨던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 가셨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제자들은 즉시 자기들 삶의 현장에 돌아가 생업인 고기잡이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것은 믿는다는 것은 이상하고 특별한 삶을 꾸리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삶 안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날따라 제자들이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애타하는 순간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시고 ,"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시자 " 제자들은 스승의 분부를 따랐고 , 결과로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이 되었단 내용이다.
작가는 이 극적인 장면을 과거와 전혀 다른 기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과거 성화 기법은 이런 풍경을 그릴 때 우리나라의 민화 기법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간단한 선 몇 개를 그어 파도를 표시하고 푸른 색 바탕으로 바다를 표시하는 기법을 사용했으나 작가는 전혀 달랐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정신을 십분 발휘해서 풍경에 있어서도 어떤 의도적인 가감을 하기 보담 있는 그대로를 과감히 성화에 표현했다.
갈릴리 호수는 이제단화가 걸릴 제네바 호수로 그 위에 보이는 산은 브와몽 지방의 몽 셀레브 산 . 이것을 넘은 먼 배경에는 눈 덮인 몽블랑 산을 그렸다.
과거 성화는 성서적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상징을 도입했으나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림으로서 이해가 어려운 불투명한 곳을 한곳도 없이 처리함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신앙의 내용은 삶의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제시했다.
신앙의 초자연적인 부분이 인위적이거나 어색한 것이 아님을 작가는 풍경화적인 기법을 통해 시원히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성화에 있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최초의 풍경화였다.
배경의 설정이 관람객들에게 너무 익숙한 인근 풍경으로 한 것처럼 성서에 등장하는 제자들 모습 역시 그 호수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런 동네 어부들 모습이어서 풍경과 거리감이 없다.
그들은 주님의 도움으로 예상외로 많은 고기를 잡아 대단히 흥분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배가 파도에 넘어지지 않도록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제자들의 모습 역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과거 회상 차원의 제자들이 아니라 자기 이웃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인간상들을 그렸다.
성당에 와서 이 제단화 앞에 선 신자들은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이 바로 자기 들이 조석으로 만나는 동네 이웃 친구와 같다는 친밀감과 함께 부활하신 주님역시 성서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지금 자기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체험으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주님의 분부를 따라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감당할 수 없이 잡혀 분주히 고기를 낚고 있는 제자들을 떠나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내려 주님께로 다가오고 있다.
작품 앞에 선 신자들 역시 베드로처럼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고픈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는 건강하고 견고해 보이는 인물상을 창출하면서 그 주위 사람들의 생활 감각을 생생히 도입함으로서 이 기적이 바로 자기들의 삶에 연장되고 있는 것 처럼 재현했다
바닷가 언덕에서 주님은 당신 분부대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계신다
그런데 주님이 서 계시는 곳이 바다인지 아니면 바닷가인지 경계가 분명치 않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은 물위를 걸으시어 제자들에게 오시기도 하신것 처럼 시공의 제약에서 벗어난 분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도 문이 잠겼는데 주님께서 들어오셨단 내용과 같다 (요한 20: 19- 23)
주님은 짙은 색깔의 붉은 옷을 입고 계시며 배에 있는 제자 몇 명도 역시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신원 확인에 중요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겪으신 바로 그 주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수난 복음에 그리스도께서 체포되시어 고통을 받으실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들의 임금님 , 만세! "하며 조롱하셨다."( 마태오 27: 27- 29)
작가는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이야 말로 과거에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분이시며 , 오늘은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분이심을 (요한 21: 9- 14)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전통적인 성화에서 주님의 옷을 언제나 붉은 색과 짙은 하늘색으로 되어 있는데, 하늘색은 그분의 신성의 표현이며 붉은 색은 그분의 인성 표현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같이 음식을 나눌 만큼 여느 인간과 똑 같은 분이심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제단화 앞에 선 신자들은 과거 성화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즉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감동적인 사건이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자기 삶의 현장에서도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면서 대단한 감동과 당황함에 빠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복음이 과거 기억의 재현이 아닌 바로 현실의 사건임을 생생이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신자들의 신앙 접근에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과거 성화는 타볼산의 변모 체험처럼 (마태오 17: 1- 9) 사람들은 현실 사바세계에서 떠나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도록 인도했다면 , 이 작품은 천상 세계를 사바세계로 끌어 내림으로서 이 세상 안에서 천상에의 기쁨과 그리움으로 이끌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속(俗)에서 성(聖)을 향한다는 과거 성화의 경향에서 속(俗)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성(聖)을 발견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성서의 다음 구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 20)
오늘 본당 신부님 강론과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오늘은 주님께 화해를 청한 날이기도했습니다.
그리고...성당 언니로부터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이란 책을
택배로 받아본 기쁜 날이기도했어요.
감사히 잘 읽고 옮겨가 다른 분들께 읽도록 권하겠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