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주님께서는 불을 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세상이 불타오르지 않기 때문에 오셨다는 말씀이십니다.
지금 제 안에서 불이 타오르지 않기에 오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불을 지르는 분이시고,
우리는 불이 타올라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올라야 할 불은 어떤 불일까요?
화火나 분노忿怒로 타오르는 불일까요,
아니면 사랑으로 타오르는 불일까요?
이렇게 제가 물으면 대부분은 사랑으로 타오르는 불이라고만 하실 겁니다.
그러나 사랑의 불이 타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분노의 불도 타올라야 한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참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을 억누르고, 거스르는 악의 세력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한다는,
정의를 거스르는 불의에 대해서는 의노를 터트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당연히 내 뜻대로 안 될 때 화를 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 뜻대로 안 될 때 내는 화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 반대인 자기중심성에서 나온 것이지요.
우리는 종종 자기중심성 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렇지만 파국을 면하기 위해서 화가 나도 참습니다.
그러나 참는 것이 한계에 이르면
다시 말해서 흔히 얘기하듯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폭발을 하고,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강하게 맞서고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 갈라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맞서 갈라질 것이라는 오늘 말씀은
서로가 자기중심적이기에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으로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 화를 내고 맞서 갈라지지만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선을 위해서 불이 타올라야 할 때,
그리고 정작 맞서고 갈라져야 할 때 파국이 두려워 비겁하게 참는데
이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불을 지르시어
분연히 불의에 맞서게 하시고 갈라질 수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불이 타오르면 자기는 죽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를 불사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소신공양燒身供養의 등신불等身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나를 태워 죽어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렵고,
다른 이들과 갈등과 긴장을 사는 것이 두렵고,
국가나 거대 세력의 압박과 박해를 받는 것은 더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무릅쓰고 자신을 불태울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안에 불을 질러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겸손 없이 분노만 있으면 안 되고,
사랑 없이 분노만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기도 없이 분노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