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스스로 풀이하고 판단할 줄 모름에 대해 꾸짖으십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징조는 스스로 풀이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스스로 풀이할 수 없음은
자연은 우리 인간이 객관적 제 3자로서 바라보기에 풀이할 줄 알지만
시대라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그 안에 연루되어 있기에
마치 우리가 시대라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때 흔히 그러하듯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언제, 어떻게 그 끝을 맺을지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이 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를 깨물어 먹으면서
가을을 한 입 베어 먹지 못한다면 저에겐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고,
저는 가을이 성큼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아직 모르는 거겠지요.
이처럼 시절에 둔감한 것처럼 시대에 둔감할 수가 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바빠 국화꽃도 한 번 유심히 보지 않는 사람은
사는 것이 너무 바빠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않고,
놀이나 게임 때문에 방에 처박혀 가을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도
시절이 가는 것을 모를 뿐 아니라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를 겁니다.
그리고 영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가을이 와도 가을과 함께 하느님께서 오시는 것은 보지 못하고
세월이 가는 것은 봐도 하느님의 때가 오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