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대림 3 주는 <기뻐하라> 주일입니다.
그래서 1, 2 독서는 물론 입당송, 본기도, 화답송, 복음 전 환호송까지
모두 기뻐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재촉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의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왜 기뻐해야 하고,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왜 기뻐해야 하는지 묻는다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제가 행복에 대해서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하듯이
기쁨도 기쁨이 없으면 자기만 손해이기에 무조건 기뻐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은 언제나 기뻐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언제나 기뻐하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기뻐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벌었을 때는 물론이고,
큰돈을 잃었을 때도 기뻐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사람의 경우 가능합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과 같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밭에 묻혀 있기에 다른 사람은 보물이 있는 것을 모르는데
자기만 그것을 알고 그 큰 보물을 손에 넣게 되니
다른 것은 다 잃어도 기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언제나 기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는 언제나 기뻐해야 할 다른 이유를 얘기해줍니다.
이사야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내려오시어 그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기쁨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 이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쁨은 바로 이 성령의 기쁨이고,
어떻게 하면 이 성령을 영접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데
많은 사람들은 성령 기도회에 참석하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
크게 틀린 말이 아니겠으되 그렇다고 성령 기도회가 만사 OK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기도회가 아니라 오늘 2독서 말씀처럼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란 영혼의 호흡이라고 아오스딩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의 숨이신 성령을 들이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과 혼이 합쳐진 것이요, 몸과 함께 우리 존재를 이루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의 영혼이 몸과 함께 주님의 영을 잘 영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성령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정신이라고도 하는 우리의 영(spirit)이 썩어빠진 정신이나 육의 영이 아니라 성령의 궁전이 되기에 합당한 기도와 헌신의 영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정신, 우리의 영이 이렇게 기도와 헌신의 영이 되어 거룩해질 때
우리의 혼 또는 영혼과 몸에도 성령이 깃들여 성전이 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얼을 차린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대림절의 깨어 있음은 이렇게 되도록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를 통해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의 기쁨으로 가득할 때
이제 우리는 한 편으로는 하느님께 모든 일에 감사할 것이고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대로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는 싸매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는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는 석방을 선포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