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에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만들어 입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께서 어디에 있는지 물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다 아시고 어둠 가운데 숨어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어둠이나마 나를 덮씌워서 빛인 듯 밤이 나를 휘감는다면 할 때에도,
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 있는지 돌아보고 스스로 답해 보라고 다그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프란치스코에게 너는 주인과 종중에
누굴 섬기는 게 유익하냐,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으신 것과 같습니다.
다 아시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알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아담과 하와를 보며 오늘 반성을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사람인가?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저냥 살아도 나는 지금 아무 문제없는 듯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어디 있는 것을 알면 괴로우니까 일부로 생각지 않는 것은 아닌지?
다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지 않았다면
오늘이라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로 있는지 돌아봐야 하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물으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어디에 있다고 우리는 하느님께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수도원에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하면 너 수도원에 있는 거 다 알아 이놈아! 하실 겁니다.
네 마음이 어디에 있니?
네 마음 상태에 어떠니?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물으시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몸이 있는 곳은 여기저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크게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든지, 하느님 떠나 있든지.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 앞에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 있습니까?
아니, 그도 저도 아니고 내 안에 갇혀 있습니까?
내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어두움입니까?
그렇다면 프란치스코처럼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달라고 청합시다.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떨거나
죄를 감추려고 나를 포장하고 있거나
빛이신 하느님을 피해 일부러 어둠 가운데 숨어들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시편 139편의 저자처럼 기도하십시다.
주여 나를 샅샅이 보시고 내 마음을 살펴 주소서.
나를 시험하시고 내 은밀한 생각들을 아시옵소서.
나쁜 길을 걸을세라 보아주시고 영원의 길을 따라 나를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