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사순시기 동안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순시기의 3대 실천이라고 할 수도 있고,
회개생활의 3대 실천이라고 할 수도 있는,
바로 단식, 기도, 자선의 실천 말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자선 또는 선행의 실천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오늘의 독서 레위기는 우리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갖가지 악행,
도둑질, 사기, 착취와 억압, 불의한 재판 등에 대해서 나열을 하는데
이는 마치 흥부전에서 놀부가 저지르는 악행을 나열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봅니다.
어떤 누구를 거꾸러트리겠다고 앙심이나 악심을 품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너무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몰라서 그러는지 몰라도
의도적인 악인보다는 어쩔 수 없는 악인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나 사업가 중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또는 욕심 때문에
상대를 거꾸러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만
보통 사람들끼리는 미움, 원한, 분노, 시기, 질투와 같은 악감정이 차올라
어쩔 수없이 하지 악의 때문에 부러 악행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악감정이 가득 차도 선의로 악행을 삼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이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감정이 있는 것은 잘못이지만 악감정이 가득 차며 보통 악의를 갖는데
악감정이 가득한데도 악의를 누르려는 선의 의지가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오늘 레위기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소극적인 가르침이라면
오늘 복음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라는 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선행에도 차이와 단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행이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선행을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한 선행이 부지기수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위선의 선행,
선행을 했다는 자기만족의 선행 등이 이런 선행인 것이지요.
제 생각에 이런 선행은 앞서 악감정이 가득한데도
선의로 악행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이에 비해 정말 순수하게 선행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 안에 선이 가득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을 하는 것인데
선이 가득함으로 악의는 없고 선의만 있기 되어 자연 선행을 하는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선이 가득하고 선의만 있을 수 있느냐인데
덕인德人은 선을 쌓아 후덕厚德해지고 후덕함으로 선행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할 때 한자로 적선積善한다고 하는데
이 적선이라는 말이 바로 선을 내 안에 쌓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덕으로서 선행을 하고, 선행을 함으로써 자기 안에 선을 쌓으며
자기 안에 선을 쌓음으로써 더 후덕해지는 선순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이런 덕인의 선행 이상의 선행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덕인의 선행이 아니라 신앙인의 선행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 사랑 때문에 하는 선행이요,
더 나아가 내가 마치 하느님인 듯이 신적인 사랑의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레위기는 우리의 주 하느님이 거룩하니 거룩한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나, 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레위기는 내가 하느님인 듯 사랑하라는 말씀이라면
복음은 이웃이 하느님인 듯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우리는 내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