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5 가지>입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노인들을 돌본 어떤 사람이 정리한 거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남 눈치 보지 말고 내 뜻대로 살 걸.
둘째, 일 좀 덜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낼 걸.
셋째,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할 걸.
넷째, 친구들과 좀 더 깊이 있게 사귈 걸.
다섯째, 좀 더 도전하며 살 걸.
그렇다면 신자요 수도자인 저는 생을 마감할 때
어떤 것에 대해 제일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할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터무니없이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린 것일까요?
욕망에 이끌려 무절제하게 삶을 허비한 것일까요?
하지 말아야 할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것일까요?
아니면 어제 우리가 봤듯이 첫째가고 둘째가는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다하지 못한 것일까요?
물론 신자인 우리는 사랑을 다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해야 할 일이지만
그러나 저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오늘 바리사이와 같은
교만과 위선이 제가 가장 후회하고 부끄러워해야할 거라 생각됐습니다.
왜냐면 어제 복음에서 봤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겠지만
교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랑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위선까지 떨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지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하며,
부끄러운 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잘난 줄 알게 하고,
그렇기에 오늘 비유의 바리사이처럼 자기의 선을 자랑하게 합니다.
예전의 저는 누구보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 때문에 매우 교만하였고,
제가 매우 교만한 것을 알면서도
교만한 나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 나의 겸손이라고 떠벌이며
전혀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고 그래서 고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세속적이지 않다는 영적 우월감으로 가득하였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무시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50여 년을 살고 난 뒤에야 교만한 저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듯이 교만은 지독한 자기집중이고, 자기중심입니다.
시선이 온통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자기밖에는 못보고,
자기밖에는 못 보기에 자기 밖에 하느님도 계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눈에 뵈는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말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한자로 무시無視이지요.
무시란 없을無에 볼視이니 시력, 곧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고,
엄연히 있고 수없이 있는데도 있는 것을 없다고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 봤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하고 피해야 할 것,
곧 교만과 위선에 대해서 봤습니다.
이 사순시기, 우리는 사랑치 못한 나를 회개하고,
사랑할 수 없게 하는 교만에 대해 회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