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만일 저를 기쁘게 하고자 한다면
제가 원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저를 더 기쁘게 할까요?
아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저와 같이 살고 있는 청원자와 유기 서원자들이
제게 꼭 필요한 물건은 선물하면서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과
제게 필요한 것은 선물하지 않지만 제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저를 기쁘게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떠실까요?
어떤 자식이 부모에게 좋은 선물은 보내면서
자기 동생이 어려운 것은 못 본 체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틀림없이 나한테 잘해 줄 생각 말고 동생 좀 도와주라고 하시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오늘 히브리서의 주님께서는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원래 시편 40편의 말씀으로
거기서는 몸이 아니라 귀를 마련해 주셨다고 노래하지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물질 선물을 원키보다는
우리가 당신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어지는 히브리서에서 주님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고 말씀하시고,
성모께서도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시고
성모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을 잉태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매일 기도하는데
그 하느님의 뜻이란 게 무엇일까요?
부모라면 자식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제가 지금 저와 같이 사는 청원자들과 유기 서원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요즘 저희 형제들이 젊어도 저보다 더 아픈 사람이 많은데
제발 영육 간에 건강하기를 바라고,
젊은이다운 열정과 사랑이 넘치기를 바라고,
한 마디로 수도생활이 그들에게 참으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뜻은 당신 자녀인 제가 행복한 것이고
저만 행복치 않고 다른 자녀인 형제들과 함께 행복한 것이며,
함께 행복하기 위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축일과 관련해서는 이것을 바라실 것 같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주님을 잉태하는 자 되기를 바라실 거고,
주님을 잉태키 위해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기를 바라실 겁니다.
오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신 마리아처럼
주님을 잉태함으로써 주님과 함께 있는 행복한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