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그들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는 곳에 가 닿았다.”

 

오늘 요한복음은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 중에 주님을 만나는 얘긴데

공관복음의 얘기와 대체적으로 같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특히 시작과 끝부분이 다르지요.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잔잔해졌음을 얘기하는데 비해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제자들 스스로 그리고 자기들끼리 떠난 것으로 얘기되고,

예수님을 제자들이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 하지만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지 않으시고 어느새 목적지에 가닿은 거로 얘기됩니다.

 

그렇다면 후대에 쓰인 요한복음이 왜 이렇게 달리 썼을까요?

그냥 그렇게 쓴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호수를 건너는 제자들의 얘기는 우리의 인생 얘기이고,

우리의 인생이란 호수 이쪽에서 저쪽으로,

곧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것과 같은데

그 가는 길에 반드시 크나큰 풍랑을 만나기 마련임을 비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하시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상관없이 그리고 자기들끼리 여정을 시작합니다.

예수님 없이 자기들끼리만 가도 상관이 없다는 뜻일까요?

 

제가 사춘기가 되어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이 고통스러운 삶을 왜 살아야만 할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내가 아니니

그렇다면 나 아닌 누구에 의해 태어난 것이겠지요.

나 아닌 누구가 하느님이라면 그 하느님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는 않고,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면 힘들게 노를 저어봤자 헛수고이니

노를 열심히 저을 수도 없고 그래도 살아야 하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았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저에게는 하느님의 존재 문제가 너무도 절실하였습니다.

왜 내가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모든 문제가 하느님이 계셔야만 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현존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했건만,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자 내가 찾으려고 그렇게 별의별 짓을 다 했건만

하느님은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지 않았고 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방황과 모색의 7, 절망의 3,

도합 10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제야 나타나셨냐고 화를 내거나

투정을 부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드디어, 마침내 나타나주신 하느님이 너무 반갑고,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의 문제도 저절로 풀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봉헌생활의 해인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봉헌생활>

봉헌생활, 곧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인생이란 <A Patre ad Patrem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께로>의 삶인데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에서

성자께서는 우리가 따라 가야 할 길이시라고 얘기합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 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없이 부부끼리, 또는 가족끼리 어디를 갈 수 있을까요?

수도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없이 수도자들끼리 간다면 어디로 가고,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5.04.18 11:30:15
    그렇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느 장소에서든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생전에 자신의 고통을 자식에게 투사하면서 화를 낸 적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고 흔들림 없이 견디는 힘이 강했던....사람이 강하면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머니는 인자함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 이전에 한 인간을 객관적으로 놓고 보더라도.......신기하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제가 몸이 아파서 곧 죽을 것같이 힘들어 하면 어머니는 "사람이 그렇게 빨리 죽지 않는단다"하고 말씀하시면 아~ 사람이 빨리 죽지 않는구나, 라고 안심을 하게 되고 또 입맛이 없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을 때 어머니는 또 "사람이 먹질 않으면 죽는단다"하시면 아~먹지 않으면 죽는 구나, 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곧 저에게 하느님이셨습니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사랑은 솜털같이 결이 부드러운 섬세함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명료함을 동시에 지녀야 함도, 인간에 대한 믿음도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착한 것도 열두가지다"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나이가 들고 경험이 확장 되면서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신부님을 비롯하여 봉헌의 삶을 서원하신 모든 성직자 수도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예수님께로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이고 목자의 언어적 비언어적인 모습을 통해서, (저는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비언어적인 모습이 언어를 뒤받침하고 더 심금을 울린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알아차리게 하고 느끼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부님을 비롯하여 모든 성직자 수도자들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참 좋은 몫을 택하셨습니다.
    자긍심을 가지시고 기쁘고 행복한 봉헌의 삶이 되시길 축원드리며 징검다리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홈페이지 元燦韓元燦韓 2015.04.18 09:34:44
    늦깍기의 뱃길에 주님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는 나약함을 긍율히 여기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 정지용정지용 2015.04.18 05:16:52
    저는 신부님께서 아주 젊은 시절 고민을 이제서야 하고 있습니다. 많이 답답합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9Apr

    부활 4주 수요일-볼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입니다. 그러니까 달리 표현하면 언성을 높이셨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오늘 왜 언성을 높이셨을까요?   아마 사람들이 당신을 좀체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제발 좀 ...
    Date2015.04.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663
    Read More
  2. No Image 28Apr

    부활 4주 화요일-나는 어떤 사람?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오늘 복음에서 저는 몇 가지 동사를 추려봤습니다. 목자에 대한 양의 태도, 주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를 나타내는 동사인데 <알아듣는다.>, <믿는다.>, <따른다.>가 그것이었...
    Date2015.04.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75
    Read More
  3. No Image 27Apr

    부활 4주 월요일-구원의 문이신 주님

      “나는 양들의 문이다.”   서울의 지하철에는 역마다 다른 시詩가 있고, 철따라 다른 시가 걸립니다. 그래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어떤 시가 걸렸나, 이 역에는 어떤 시가 걸렸나를 보며 시를 감상하는 것이 저의 즐거움과 기쁨 중의 하나...
    Date2015.04.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07
    Read More
  4. No Image 26Apr

    부활 제 4 주일-당신 행복에로 부르시는 주님

      오늘은 성소주일이며 살리시는 주님, 구원하시는 주님, 소중히 여기시는 부활의 주님을 기념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혼동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해야 할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Date2015.04.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50
    Read More
  5. No Image 25Apr

    부활 3주 토요일-고통과 어려움 중에 맺어지는 영적인 관계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자기의 아들이라고 하는 마르코 사도 축일입니다. 이때의 아들은 혈육으로 아들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의형제처럼 베드로와 마르코가 부자관계를 맺어...
    Date2015.04.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618
    Read More
  6. No Image 24Apr

    부활 3주 금요일-먹어야만 산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산다. 너나없이 먹어야 산다.   씨름 선수가 씨름을 잘하려면 기술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기술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Date2015.04.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79
    Read More
  7. No Image 23Apr

    부활 3주 목요일-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잘 알아들으려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다른 데서 하신 말씀과 비교하면 오늘 주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주...
    Date2015.04.2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51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929 930 931 932 933 934 935 936 937 938 ... 1368 Next ›
/ 136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