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시작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두려운 나머지 예루살렘을 떠나갔던 이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이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두려움이 더 큰 나머지 예루살렘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부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사건,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심지어 눈으로 직접 본 제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변모 때에 몇몇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 부활의 모습을 보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했던 주님이시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생각이 제자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기적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셨지만,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믿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의 마지막은 부활을 널리 전하라는 사명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심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요한복음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구약이 처음부터 이야기 해 온 메시아는, 하느님 사랑 표현의 마지막 정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오늘 복음에 의하면, 죄의 용서를 통한 회개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나약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용서를 청할 수 있고, 서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뉘우침, 그러한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사랑의 길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을지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 속에서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사랑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려 사랑을 보지 못하게 막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까?
이제 상대방에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어야겠습니다. 미움과 시기로 닫았던 마음을 열 때, 우리도 우리 곁에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