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든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가서 감동을 받았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도 저희의 3회인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저희 1회가 가기 전에
이미 있었고, 그것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독백처럼 터져 나온 말이 ‘아! 한국의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민들레 홀씨처럼 이곳 미국에까지 퍼졌구나!’였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얘깁니다.
베드로 할아버지는 생면부지 미국에서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당신이 시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젊고 훌륭한 형제 한 분을 찍었답니다.
그런데 젊은 그분은 그때까지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기에 당연히 거절하였는데
어른의 간절하고도 끈질긴 요청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마침내 할아버지에게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배우고
젊은이들을 모아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저희들처럼 선교사로 그곳에 가신 것이 아닙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녀들을 따라
어쩌면 원치 않았는데도 낯선 곳에 가 살게 되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희처럼 적극적인 선교사는 아니어도
당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작지만 위대한 선교를 하신 겁니다.
오늘 사도행전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스테파노의 사건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를 받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들은 풍비박산, 곳곳으로 흩어집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보면 교회가 깨지고 흩어진 것이지만
예루살렘 밖을 중심으로 보면 교회가 흩어져 퍼져 나간 것입니다.
사도들은 굳건하게 예루살렘을 지키지만
박해가 두려워 피한 사람들은 곳곳에 디아스포라(Diaspora),
곧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박해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지요.
박해를 무릅쓰고 천주교를 전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박해를 피해 간 곳에 공소를 세워 교를 퍼트린 분들이 있었지요.
구약의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시기질투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로 끌려갔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 안에 있었듯이
예루살렘 교회도 인간적으로만 보면 박해로 망한 것이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교회가 확장되고 강건해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듯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날뛰던 사울이 나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이방 지역에 그리스도 공동체를 건설하는 선교사 바오로로 바뀐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바오로도 쓰시고,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도 쓰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 손 안에 도구들, 연장들입니다.
지금 내게 벌어진 일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케 하실 뿐 아니라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필요한 도구와 연장으로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