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파견된 이가 파견한 분보다 낮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인데 그럼에도 주님께서
이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그 뜻이 무엇일까?
아는 것으로 행복하지 않고 실천으로 행복하다는 말씀일 것이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앎만이 행복에 이바지하는 앎이며,
실천하지 않는 앎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일 뿐이라는 말씀일 겁니다.
우리는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 압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것은 실천으로도 행복으로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2인자는 1인자보다 높지 않다고 머리로는 다 알지만
마음으로는 자기가 2인자라는 것을 인정치 않고 싶고,
그래서 상대가 자기보다 높은 1인자라는 것을 인정치 않고 싶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아는 것은 쉽게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고,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인정을 해야 겸손으로 이어지면서
종 또는 파견된 자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세례자 요한이 자기의 정체성을 잘 안 것과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내 뒤에 오시지만 실은 그분이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며,
그분은 점점 커져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
이렇게 정체성을 잘 안 세례자 요한은 그에 맞게 행동합니다.
무엇이냐 하면 자기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내줍니다.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은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기 전
나인이라는 곳에서 예수님보다 먼저 세례 운동을 펼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제자들은 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세례자 요한은
“보라. 저기 하느님의 어린 양이 가신다.”며 예수님을 가리키고,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따라 가 계신 곳을 보고 난 뒤 제자들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하다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예수는 점점 커져야 하고, 자기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는 자기 말을
세례자 요한은 정말 그대로 실천을 한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면 이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군림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셨음에도
제자들이 그렇게 실천하지 않을까봐
종(제자들)이 주인(예수님)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제자들)는 파견한 이(성부, 예수님)보다 높지 않다고 하십니다.
높으신 주님께서 당신을 낮추시고 사람들을 섬기시니
낮은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라 하시는 겁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이 말에 아직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길 때 사랑이 차오르는 경험을
억지로라도 한 번 하면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할 때 겸손하고 겸손할 때 사랑이 차오름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