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통틀어 볼 때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들보다
“세상”을 훨씬 더 많이 언급하고 있고,
“세상”을 안 좋은 것으로, 말하자면 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언급들을 훑어보면 대략 이런 식입니다.
세상이 그분을 통해서 생겨났는데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빛으로 보내주셨는데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하는 일이 악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미워함은 내가 세상을 두고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세상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세상이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빛이 있고 어둠이 그 반대로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빛과 어둠, 둘이 있는 게 아니라 빛 하나만 있으며
빛이 있으면 밝음이고, 빛이 없으면 어둠인 것이기에
우리는 빛과 어둠 중에 어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빛을 선택하지 않음이 어둠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빛이신 하느님을 세상은 택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싫어할까요?
제가 지난 번 3보1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느낀 것이
우리 수도원의 젊은 형제들이 참으로 착하다는 것이었고,
밖의 젊은이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참 쉽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3보1배에 참석한 젊은이들이라면 좋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나이가 많은 제가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하며 좀체 곁을 주지 않고
별로 할 말도 없어 모른 체 지내는 것을 더 편해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괜히 친해지려고 다가가는 것은 주책이 없는 거지요.
하느님도 우리에게는 비슷할 거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아주 거북하고, 싫으며
그래서 숫제 하느님이 안 계시는 것이 편하고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워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왜 세상은 하느님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미워할까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세상이 싫어했다면
하느님을 거슬러 마음대로 한 죄악을 빛이 들춰내기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자기들의 죄악과 추함이 드러나지 않을 텐데
빛이 세상에 왔고 그래서 자기들의 죄상이 다 드러나기에
세상은 죽으라고 빛을 미워하고 자기들을 파괴하는 빛을 파괴하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면 우리도 주님처럼 빛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세상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한 통속이라면 우리를 미워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주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에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래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주님께 뽑힌 제자입니까, 아닙니까?
주님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뽑으신다면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풀이 흙에서 뿌리째 뽑히듯,
내가 세상으로부터 뽑힌다면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까, 사랑을 받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아주 거북하고, 싫으며
그래서 숫제 하느님이 안 계시는 것이 편하고 좋을 거 같습니다"
라는 말씀은,
혼자 있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여럿이 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이
동일한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알아들어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요.
저에게 "너가 바라는 것이 뭐냐?"라고 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일 겁니다. 칼자루를 내가 쥐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근데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알려면
제가 혼자 있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보면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것 같습니다.
해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서이지 해가 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내 안에 구름으로 가린 어두움은 없는지...
빛이 어디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어두움을 몰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과 희망을 품고 오늘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