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와 선
전 이 형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형제의 허락을 얻어 카페에 올려놓은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간접적이지만, 피정 모임둥 사진과 글을 통해 늘 함께 합니다.
** 후기 **
모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청명하고 햇살이 따스하여 설레었는데
막상 출발하는 날, 하늘에 연회색 구름이 끼고 습도도 높아지자 기분이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아니, 날씨탓을 할 것이 아니라 최근의 저는 우울함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혹 계절을 타는것일까 싶기엔 너무 지나치리만큼.
버스를 타자 감미로운 첫 모임으로 향하던 설레임이 남아있는 듯
기분이 나아졌지만, 회뿌연 하늘아래 고층빌딩들과 논밭은 그저 고질적으로 보일 따름이었고
신약성경도 챙겨왔지만 박완서씨의 '나목'을 펼쳐들었습니다.
어쩌면 전후에 박완서씨가 주인공을 빌어 표현한 황폐함이 내게도 벌어지도 있는듯하여
징그러움에 치를떨며 잠을 청했으나 얼마쯤 잤을까, 벨트를 풀어야 할 정도로 버스는
터미널에 가까이 와 있었고 짐을 챙겨 터미널에서 내렸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리니 시간은 4시 5분.
늘 재촉하던 발걸음을 오늘은 다소 늦추며 혹 그동안 놓쳤을 무언가가 있으려나
괜히 이곳 저곳을 낱낱이 훔쳐보며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담장에 금빛으로 붙여진 '작은 형제회'가 보일 무렵 4시 25분이었고
왜였을지 어느덧 제 발걸음은 성북동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듯한 기분에
잠시 예수님이나 뵙고 가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무심코 들어간 성당에선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들어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고, 성체공경 뒤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 어린이 미사였군..'
격조나 격식은 없을지 모르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순수함..
전례곡은 서울대교구에서 쓰이는 어린이 전례곡인듯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계집 아이들과 사내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막되먹은 음성에서
천부적 화음은 자연스레 어우러졌고 그레고리아, 국악, 신상옥..
그 어떤 전례곡보다 제 가슴에 따스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옆에 참 단아하다는 느낌을 주시는
흰 수도복을 입으신 수녀님이 계셨는데 어느 회인지는 잘..)
성찬이 거행되자 전 조용히 성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우울따위는 말끔히 씻어버리고 나서요.
그런데 막상 성모자상께 인사를 드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유리문을 보자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휴게실 앞쪽까지 걸어갔다가 형제들의 웃음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되돌려 입구쪽으로 후다닥 나왔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다시 들어갔습니다.
낮이 익은 형제님, 처음 뵙는 형제님, 그리고 수사님들..
문득 가슴 저편 어딘가에서 두달 동안 굳어져버린 형제애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처음엔 다소 경직되어 있었으나, 이내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시간, 성무일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김 데레사 수녀님께 조금 배워보려다 받아버린 성무일도를 묵혀둔것이 떠올라
송구함이 들었으나, 은은한 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형제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며
도데체 이 두꺼운 책은 뭔가 싶어 펴보니 시조 같기도 하고 정형시 같기도 하여
의아해하다가 형제님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했던 모임 초기때가 생각나
지금은 페이지를 어느정도 찾아 볼 수 있게 된 제게 뿌듯함도 느끼고
그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하느님께 봉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교의 시간. 자기소개를 해야한단 말을 듣고 문득 이제껏 해온 자기소개마다
뻘쭘해하고 정형적인 말들만 내뱉은 듯 하여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고민끝에 나온 소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기 위해 열심히 안테나 세우고,
열심히 귀 기울이고, 낮은이가 되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살레시오회 신부님의 말씀과 이것저것을 짬뽕하여 나온..
반응은 다소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애늙은이라는듯한=ㅛ=!!?
그동안 서로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나 2개월간 쌓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퍽 많이 흘러 11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바치고, 간단히 씻은 뒤 잠을 청했습니다.
안토니오와 비오의 축일 선물을 주기위해 방을 깜짝 방문한 형제님 덕에
아주 살짝 설치긴 했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으니..
1시 30분 이었을까요. 몸에 강하게 느껴지는 혈액의 분순환으로 인한 가벼운 흥분에
잠을 깨니 귀에선 모기가 윙윙 약을 올려대고 대여섯 군대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30분정도 씨름하다 이내 지쳐 잠이 들었고
다행히(?) 녀석들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더이상 성가시게 굴지 않았습니다.
여느때와같이 5시 10분전 눈이 뜨여 숨을 죽여가며 방을 빠져나와 씻은 뒤
5시 30분정도 옷을 갈아입고나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전면이 전부 유리화로 이루어진 성당은 해가 떴을 때 장관을 이루지만
개인적으론 새벽의 푸르스르한 활력과 가로등의 주황빛이 유리화를 통해
비춰올 때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아직도 유리화의 내용은 이해가 안가지만
처음에 왔을 땐 고상이 없는 성당이라고 참 의아해했었는데..
졸음이 가시진 않은채였지만 하느님과 데이트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다이어리에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것들을 끄적이니 기상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이불을 개고, 시트를 벗겨내고, 휴게실에서 일찍 일어난 형제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신문도 뒤적거리다 보니 아침기도 시간이 되었고
주일아침기도 역시 노래로 바쳐졌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전날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눈꺼풀이 무겁긴 했지만 기도문 한구절 한구절을 새겨가며 바치도록 노렸했지요.
특히 독서 말씀이 뇌리와 가슴 깊이 새겨졌는데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었습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아, 나태한 이의 우울함이란 그 얼마나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치입니까?
아침기도 후 아침식사를 하고 신부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아니 강의라기보단 나눔이었달까요.
비록 시간에 쫓긴감이 없진 않았지만 신부님의 개인사를 통해 제가 다시한번 확실히 느낀것은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은 "신비"라는 것 이었습니다.
후에 휴식시간을 갖고 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지만
사부님께서 오상을 받으신 날이기도 하였지요.
청원기 형제들이 수련착복을 받는 영광된 날이기도 하구요.
그리하여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들은 뒤
(사실 신부님의 나눔부터 강론까지 졸음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_-;)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성당으로 모여 신부님께 강복을 받고나니 어김없이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형제님들과 악수를 나누고, 따스한 미소와 인사를 나누고,
처음 인사할 기회를 놓쳐 모임중 별로 말을 나누지 못한 바실리오 형제님과
"화이팅!"이라며 서로에게 응원 보낸 뒤 가벼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물론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만은 없겠지만
수도원에서 리필한 세상을 상대할 용기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충만함에
그 발걸음이 어찌 무거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전 이 형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형제의 허락을 얻어 카페에 올려놓은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간접적이지만, 피정 모임둥 사진과 글을 통해 늘 함께 합니다.
** 후기 **
모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청명하고 햇살이 따스하여 설레었는데
막상 출발하는 날, 하늘에 연회색 구름이 끼고 습도도 높아지자 기분이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아니, 날씨탓을 할 것이 아니라 최근의 저는 우울함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혹 계절을 타는것일까 싶기엔 너무 지나치리만큼.
버스를 타자 감미로운 첫 모임으로 향하던 설레임이 남아있는 듯
기분이 나아졌지만, 회뿌연 하늘아래 고층빌딩들과 논밭은 그저 고질적으로 보일 따름이었고
신약성경도 챙겨왔지만 박완서씨의 '나목'을 펼쳐들었습니다.
어쩌면 전후에 박완서씨가 주인공을 빌어 표현한 황폐함이 내게도 벌어지도 있는듯하여
징그러움에 치를떨며 잠을 청했으나 얼마쯤 잤을까, 벨트를 풀어야 할 정도로 버스는
터미널에 가까이 와 있었고 짐을 챙겨 터미널에서 내렸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리니 시간은 4시 5분.
늘 재촉하던 발걸음을 오늘은 다소 늦추며 혹 그동안 놓쳤을 무언가가 있으려나
괜히 이곳 저곳을 낱낱이 훔쳐보며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담장에 금빛으로 붙여진 '작은 형제회'가 보일 무렵 4시 25분이었고
왜였을지 어느덧 제 발걸음은 성북동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듯한 기분에
잠시 예수님이나 뵙고 가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무심코 들어간 성당에선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들어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고, 성체공경 뒤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 어린이 미사였군..'
격조나 격식은 없을지 모르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순수함..
전례곡은 서울대교구에서 쓰이는 어린이 전례곡인듯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계집 아이들과 사내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막되먹은 음성에서
천부적 화음은 자연스레 어우러졌고 그레고리아, 국악, 신상옥..
그 어떤 전례곡보다 제 가슴에 따스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옆에 참 단아하다는 느낌을 주시는
흰 수도복을 입으신 수녀님이 계셨는데 어느 회인지는 잘..)
성찬이 거행되자 전 조용히 성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우울따위는 말끔히 씻어버리고 나서요.
그런데 막상 성모자상께 인사를 드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유리문을 보자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휴게실 앞쪽까지 걸어갔다가 형제들의 웃음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되돌려 입구쪽으로 후다닥 나왔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다시 들어갔습니다.
낮이 익은 형제님, 처음 뵙는 형제님, 그리고 수사님들..
문득 가슴 저편 어딘가에서 두달 동안 굳어져버린 형제애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처음엔 다소 경직되어 있었으나, 이내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시간, 성무일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김 데레사 수녀님께 조금 배워보려다 받아버린 성무일도를 묵혀둔것이 떠올라
송구함이 들었으나, 은은한 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형제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며
도데체 이 두꺼운 책은 뭔가 싶어 펴보니 시조 같기도 하고 정형시 같기도 하여
의아해하다가 형제님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했던 모임 초기때가 생각나
지금은 페이지를 어느정도 찾아 볼 수 있게 된 제게 뿌듯함도 느끼고
그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하느님께 봉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교의 시간. 자기소개를 해야한단 말을 듣고 문득 이제껏 해온 자기소개마다
뻘쭘해하고 정형적인 말들만 내뱉은 듯 하여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고민끝에 나온 소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기 위해 열심히 안테나 세우고,
열심히 귀 기울이고, 낮은이가 되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살레시오회 신부님의 말씀과 이것저것을 짬뽕하여 나온..
반응은 다소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애늙은이라는듯한=ㅛ=!!?
그동안 서로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나 2개월간 쌓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퍽 많이 흘러 11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바치고, 간단히 씻은 뒤 잠을 청했습니다.
안토니오와 비오의 축일 선물을 주기위해 방을 깜짝 방문한 형제님 덕에
아주 살짝 설치긴 했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으니..
1시 30분 이었을까요. 몸에 강하게 느껴지는 혈액의 분순환으로 인한 가벼운 흥분에
잠을 깨니 귀에선 모기가 윙윙 약을 올려대고 대여섯 군대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30분정도 씨름하다 이내 지쳐 잠이 들었고
다행히(?) 녀석들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더이상 성가시게 굴지 않았습니다.
여느때와같이 5시 10분전 눈이 뜨여 숨을 죽여가며 방을 빠져나와 씻은 뒤
5시 30분정도 옷을 갈아입고나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전면이 전부 유리화로 이루어진 성당은 해가 떴을 때 장관을 이루지만
개인적으론 새벽의 푸르스르한 활력과 가로등의 주황빛이 유리화를 통해
비춰올 때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아직도 유리화의 내용은 이해가 안가지만
처음에 왔을 땐 고상이 없는 성당이라고 참 의아해했었는데..
졸음이 가시진 않은채였지만 하느님과 데이트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다이어리에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것들을 끄적이니 기상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이불을 개고, 시트를 벗겨내고, 휴게실에서 일찍 일어난 형제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신문도 뒤적거리다 보니 아침기도 시간이 되었고
주일아침기도 역시 노래로 바쳐졌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전날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눈꺼풀이 무겁긴 했지만 기도문 한구절 한구절을 새겨가며 바치도록 노렸했지요.
특히 독서 말씀이 뇌리와 가슴 깊이 새겨졌는데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었습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아, 나태한 이의 우울함이란 그 얼마나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치입니까?
아침기도 후 아침식사를 하고 신부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아니 강의라기보단 나눔이었달까요.
비록 시간에 쫓긴감이 없진 않았지만 신부님의 개인사를 통해 제가 다시한번 확실히 느낀것은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은 "신비"라는 것 이었습니다.
후에 휴식시간을 갖고 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지만
사부님께서 오상을 받으신 날이기도 하였지요.
청원기 형제들이 수련착복을 받는 영광된 날이기도 하구요.
그리하여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들은 뒤
(사실 신부님의 나눔부터 강론까지 졸음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_-;)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성당으로 모여 신부님께 강복을 받고나니 어김없이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형제님들과 악수를 나누고, 따스한 미소와 인사를 나누고,
처음 인사할 기회를 놓쳐 모임중 별로 말을 나누지 못한 바실리오 형제님과
"화이팅!"이라며 서로에게 응원 보낸 뒤 가벼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물론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만은 없겠지만
수도원에서 리필한 세상을 상대할 용기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충만함에
그 발걸음이 어찌 무거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