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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06.09.20 09:17

볼만한 볼거리 소개

조회 수 7602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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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혹 내 자신이 너무 고상하게(?) 살려다 괴상하게 (?)된 인간이란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영화에 대한 태도이다.

보통 남성이라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중국풍의 무술영화나 요즘 온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헐리웃 스타일의 영화 들, 거금을 투자해서 고급 자동차를 박살내고 총질을 해서 시원히 사람을 죽이고 큰 빌딩을 때려 부수는 것 같은 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것이 딱 질색이고 우리 영화 중에서도 흥행에 성공치 못한 영화나 외국 영화 역시 이란 터키 , 러시아 영화들을 즐기는 편인데 ,이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동생활에서 형제들과 어우러짐에 조그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이렇다보니 지금껏 고속버스로 여행할 때 어쩔 수 없이 보여 지는 필름 외에 무술 영화 한편을 본적이 없는데, 참으로 기이하게도 수녀원 피정 지도 중 피정중인 수녀님들과 함께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종신서약을 준비하는 수녀님들의 피정에, 담당 수녀님이 오셔서 조심스럽게 장상 수녀님의 부탁이니 무술 영화 한편을 볼 수 있겠느냐고 허락을 청했다.

장상 수녀님이 피정 중 무술 영화의 관람을 권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이긴 해도 직속 장상의 부탁은 들어주는 게 피정 인도자로서 예의란 생각으로 저녁 시간 영화 관림을 시간을 마련하고 피정자들과 함께 관람했다.


제목은 <무인 곽원갑> 작년엔가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것인데, 1900년대 중국이 외세에 힘없이 쓰러지는 격동의 시기에 무술정신으로 영웅이 된 인물의 생애이며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몇 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시사회 직후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은 영화이며 ,그 영화 시사회에 주연 배우가 참석해서 남긴 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통념적 무술 영화라는 가벼운 볼거리가 아닌 육신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힘의 영성이란 지평선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감동을 준 영화이다.

영화는 태평천국의 난 ,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의 무능이 드러나면서 구라파 열강들이 중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상해, 천진 등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중국인의 자존심이 무너지며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외세에 대한 아첨에 가까운 비굴함이 정착되는 혼돈속에서 주인공은 강직한 무술 정신의 정수를 보이는 정무문(精(武門)이란 무술 협회를 조직해서 허물어지고 있는 중국인의 고귀한 혼을 일깨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공은 무술에 대한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무술의 정의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며 무술의 단계를 세 등급으로 나누는데, 첫째는 몸에도 마음에도 칼을 지니고 항상 남을 해쳐 이기는 것을 승리로 여기는 가장 저급의 단계이며 , 둘째는 몸에는 보통 많은 사람들이 물들어 있는 단계로 평화로운 삶을 외치며 손에는 칼이 없으나 마음에 칼을 품고 상대방을 때려 잡을 자세로 살아가는 단계이며 마지막 단계는 몸에도 마음에도 칼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단계이며 이 단계가 무술의 최고경지이며 이것은 곧 종교의 경지가 되며 이 단계에 왔을 때 진정한 무술성이 증거 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주인공은 처음엔 우리들에게 익숙한 저질 깡패 수준의 힘 자랑꾼에서 슬슬 변화되는게 아니라 처음에도 선량한 인품을 가진 사람으로 당시 격투를 할 땐 각서를 쓰고 하나가 죽으면 승리자와 영웅이 되는 수준에서 시작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승리가 될 수 없고 힘의 절정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승리라 깨달으면서 경기 중 상대방의 허점을 노려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끝까지 정당방위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배려하는 신사도로 변화되는 여정의 기록이다.

주인공은 무술의 최고의 경지가 바로 종교성임을 깨달으면서 무술의 달인으로 변화되는데, 정당하고 신사적인 방법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무인 신분이나 종교적 가치를 통해 인간성의 최고 경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수도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수도 공동체에서 사랑과 봉사의 삶에 불림 받은 모든 이들은 다 어떤 면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랑스러운 무인이 힘 사용에 고도의 숙고를 하듯 수도자 역시 자기가 하는 일 , 해야 하는 일에 있어서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에 대해 , 자기가 하는 일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인지에 대해 온 양심을 다해 숙고를 해야 한다.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일이라 생각하며 여러 핑계로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일을 만들다 보면 하느님이나 창설자를 팔아먹고 사는 천한 장사꾼이 되기 쉽고 복음적 집단의 도덕성은 바로 얼마나 이런 장사꾼들에 대한 정확한 감수성을 가졌느냐와 비례한다.

한자의 武(무)의 뜻은 그친다는 뜻의 止(지)와 창이란 뜻은 戈(과)의 합성이기에 무술의 정의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란 참으로 역설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 것처럼 수도자가 힘쓰는 사랑과 봉사 역시 신의 이름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표현하면 “작은 자” “겸손 ” 등의 극도의 자기 무화(自己 無化)를 겨냥한 피나는 수행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수도자 역시 힘으로 상대방을 때려 부수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삼류 수준의 “무인 “ 우리 사회에서 회자하는 폭력 집단의 똘만이 수준의 인간이 되고 만다

작품의 주인공처럼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무인은 바람직한 경지를 구축하기 위해 종교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추하지 않은 향기로운 종교인이 되기 위해선 자주 무인의 경지를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 영화는 시사하고 있다.

육체성의 표출인 힘을 도구로 삼아 살아가는 무인의 처지와 영혼의 극치를 추구하는 수도자의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에 서로가 상대방을 바라보면 완성의 길에 도움이 된 다는게 이 영화의 교훈이다.

어떤 명예욕이나 자기과시에의 유혹에도 빠짐이 없이 힘의 바른 사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그는 어이없게도 악의 세력이 준비한 독약을 마시고 인생을 끝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되나 숨을 지는 순간에 까지 힘의 사용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무인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러기에 자랑스런 무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순교성월에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순교 성인들과 또 다른 형태의 우리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교회 잡지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이 영화를 권한 그 장상 수녀님을 알게 되었는데, 독서량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너무 수수하고 어리숙하게 보여 그 분이 장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냈다.

이분이 왜 자기 수녀들에게 하고 많은 영화 중에 여성들에게 생경스러운 무술영화를 보도록 배려했는지 생각하면서 수도생활의 과정인 사랑과 봉사라는 수도의 본질 표현은 무인의 수련 경지와 닮은 면이 많음을 통해 수도의 여정을 재조명해보라는 뜻에서 라는 생각이 든다.

수도생활의 관점에서만 수도생활을 보다보면 마치 장에 갇혀 무위로운 쳇바퀴 돌리기를 반복하는 다람쥐처럼 되기 쉬우므로 다른 인생의 관점에서 우리 생활을 조명하면 공허한 언어의 유희로 반복되면서 타성에 젖어 보지 못했던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에 그분은 자기 자매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지 않았는가라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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