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승천 대축일의 본기도와 감사송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주님께서 으뜸이며 선구자로 앞서 가심은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이에 비해 사도행전에서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그러니 오늘의 본기도와 감사송은 오늘 사도행전에서
천사가 제자들에게 한 말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오늘 승천 대축일의 두 가지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떠나시며 맡기신 사명을 우리가 완수하는 것과
그렇지만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계신 하늘을 늘 바라보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께서 먼저 사시고,
그리고 떠나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 가신 곳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세상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버지의 파견을 받아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오셨듯
우리도 주님의 파견을 받아 온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자주 말씀하시듯
사제들은 성당 밖 세상에로 나아가야 하고,
수도자들도 수도원에만 머물려고 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사는 신자들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이
주일 성당 안에서만 신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정주하지 않고 수도원 안에 안주하고픈 유혹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가서”라는 말씀은 간과하고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말만 듣고
성당 건물을 세 개나 고쳤는데 나중에서야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줄 알고
복음 선포를 위해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탁발의 삶을 살기 시작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있는 복음,
걸어가는 복음으로서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주님의 명령어 중에서
“모든 피조물에게”라는 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민족 또는 모든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
분명히 “모든 피조물에게”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적이고 생태적인 복음 선포를 우리가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가 또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지요.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마치면 우리도 주님을 따라 승천해야 한다는 것이고,
종말에 하늘에 올라가기 전에도 늘 주님과 잇닿아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실상 우리는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주님과 늘 잇닿아 있지 않으면 우리가 쉽사리 세속화되고 맙니다.
우리는 참말로 세속화와 복음화의 그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 감사송 때 “마음을 드높이 주님을 향하여”를 외치는데
진정 우리는 세상 한 가운데서 늘 하늘의 주님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세상 한 가운데 살면서도 세속화되지 않을 것이고,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먼저 자기를 복음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에 <흙탕물 속의 연꽃>이라는 비유가 있지요.
깨달음의 상징인 연꽃은 산속 깨끗한 물에 피는 것이 아니라
세상 흙탕물 가운데 피지만 결코 그 물에 잠기는 법이 없이
세상에 연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풍긴다는 비유입니다.
승천의 삶은 흙탕물 속의 연꽃 같은 삶인 것 같습니다.
발을 땅에 디디고 서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향해있는 것처럼
세속을 살면서도 탈세속화를 살아야 한다는 것, 참으로 말처럼 쉽지 않네요.
마치 곡예사가 외줄을 타는 것처럼 매 순간 깨여있지 않으면 말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그래서 부족한 저에게 당신의 은총을 더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실상 우리는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주님과 늘 잇닿아 있지 않으면 우리가 쉽사리 세속화되고 맙니다.
우리는 참말로 세속화와 복음화의 그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