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오늘 주님께서 <착한 행실>에 대해서 말씀하시어
착한 행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생각하다보니
떠오르는 말이 <착한 고기>, <착한 가격>이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참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지요.
고기라면 좋은 고기, 나쁜 고기라고 해야 하는데
고기가 마치 의지를 가진 존재인양 착하다, 악하다 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원하는 고기, 사람들이 원하는 가격이라는 뜻이겠고,
그러니까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있는 고기를 말하는 거겠지요.
착한 행실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반대말인 악한 행위였습니다.
악한 행위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남을 불행하게 하는 짓이지요.
말하자면 사기 쳐서 빼앗든, 힘으로 빼앗든 애써 모은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때리고, 욕하고, 술주정하고, 상처주고, 뒤통수치고, 억누르는 등
사람들이 싫어하는 온갖 짓을 하여 괴롭히는 짓거리지요.
그러니까 착한 행실이란 남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주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행위가 있으면 그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잇속을 차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 되게 하는 것이며
자기 좋을 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정말 어둔 세상에 빛을 주는 참된 빛의 행위일까요?
그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일까요?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원치 않는 짓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그런 소극적인 것은
어둠은 되지 않을지언정 진정 빛이 되지는 못합니다.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의 빛이 되려면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것이고, 사랑이며, 희생적 사랑이어야 하고,
촛불처럼, 횃불처럼 자기를 태우며 세상을 비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착한 행실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착하다는 것은 어른의 말을 아이가 잘 들을 때
어른이 원하는 것을 아이가 할 때 쓰는 말이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어른이 할 때 쓰는 말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빛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바쳐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세상 빛이 되는 것이며
그렇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하느님 때문에 하게 될 때
우리의 착한 행실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양케 하는 착한 행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과시욕으로 좋은 일을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좋은 평가, 칭찬을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착한 행실로 나를 과시할까봐
등불을 함지로 덮어버리듯 착한 행위를 감추거나 아니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실은 세상을 비추고
하느님을 찬양케 하는 착한 행실이며 그런 것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