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의 성 안토니오의 생애는 어쩌면 뒤틀린 인생입니다.
뒤틀린 인생이란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된 인생을 말하지요.
그렇다면 성 안토니오는 어떻게 인생이 뒤틀렸다는 것일까요?
그의 생애는 참으로 짧습니다.
36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으니 짧은 인생이라 할 수 있지요.
이 36년의 인생에서 자기 생각대로 또는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자기 생각대로 된 것은 한 가지 있습니다.
아오스딩 수도회 수도자에서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된 것이
이슬람에서 순교한 작은 형제들처럼 순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순교하기로 간 모로코에서 중병에 걸려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고향을 포르투갈을 향했지만 그러나 태풍을 만나
안토니오는 뜻하지 않게 이태리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작고 낮은 자로서 조용히 살고자 하였지만
이번에도 뜻하지 않게 사제 서품식 강론을 하게 되어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설교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그는 또 뜻하지 않게 작은 형제회 안에서 신학자와 관구장이 됩니다.
30 대에 관구장이 되었으니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신학자가 되어 형제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란치스코가 허락한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겠다고 하자 프란치스코는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나의 주교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편지를 씁니다.
신학 연구로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면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사실 안토니오는 아오스딩 수도회에 있을 때 신학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그가 살고자 했던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대로 ‘기도와 헌신의 영’에 따라 신학을 가르치지요.
오늘 지혜서의 “나는 기도를 올려서 지혜를 받았고,
하느님께 간청하여 지혜의 정신을 얻었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식은 하나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지식욕, 지적인 욕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세에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지식을 쌓으려 할 수도 있지만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알고픈 욕심 때문에
지식을 쌓으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지혜는 다릅니다.
욕구가 아니고 깨달음이며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는 무엇보다도 인격적입니다.
오늘 지혜서가 얘기하듯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하느님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무신론자이고
그러하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지요.
이것을 프란치스코의 표현으로 바꾸면
육의 영(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얻으려고 하고
기도와 헌신의 영(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혜를 얻으려고 합니다.
안토니오의 일생은 뒤틀린 인생입니다.
자기 뜻대로 된 것이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뜻대로 된 것인데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뒤틀린 안토니오 인생이 그렇다면 불행한 인생이겠습니까?
주님 계신곳에서 영원을 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