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무신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신론이란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하지만
실천적 무신론이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실천적 무신론이란
그의 실천에 있어서 하느님은 안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느님 때문에 안 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느님 때문에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하고 안 하고는 하느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은 행동할 때만이 아닙니다.
나의 삶 안에,
나의 인생 안에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계시지만
나의 삶 안에는 아니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저기 별에 계시거나
그렇게 멀지는 않아도 저기 부산에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거기에 나와 상관없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만 계시든 안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지만
나는 그 사랑을 필요로 하지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좋은 분일 것이라 믿지만
나는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하느님의 좋으심을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지만
내 힘으로 안 될 때 하느님의 힘으로 될 거라 믿지도 않고
한 번도 그분의 힘에 의탁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하느님 나라에서 전능하신 분으로 혼자 계시고
나는 나의 세계에서 하느님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큰 아들은 비록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늦게라도 실천을 합니다.
작은 아들은 선선히 하겠다고 했지만 실천하지 않습니다.
작은 아들은 애초부터 아버지의 명을 건성으로 들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발톱의 때만큼도 중요시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도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고민, 고민하다가 아주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상대는 아주 쉽게 ‘알았어, 알았어!’ 하더니
나중에 보니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
고민, 고민하다가 아주 어렵게 충고를 했는데
상대는 금방 ‘충고해주어서 고맙다’고 하더니
나중에 보니 전혀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 행동을 하는 경우.
이 경우 차라리 불쾌해하거나 반박을 한 경우보다 더 나쁩니다.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나를 성찰해봅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듣는 것으로 그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씀의 응답을 하고 있음을.
하느님은 계시지만
주님으로 계시는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음을.
무신론이란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하지만
실천적 무신론이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실천적 무신론이란
그의 실천에 있어서 하느님은 안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느님 때문에 안 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느님 때문에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하고 안 하고는 하느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은 행동할 때만이 아닙니다.
나의 삶 안에,
나의 인생 안에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계시지만
나의 삶 안에는 아니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저기 별에 계시거나
그렇게 멀지는 않아도 저기 부산에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거기에 나와 상관없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만 계시든 안 계시든 상관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지만
나는 그 사랑을 필요로 하지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좋은 분일 것이라 믿지만
나는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하느님의 좋으심을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지만
내 힘으로 안 될 때 하느님의 힘으로 될 거라 믿지도 않고
한 번도 그분의 힘에 의탁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하느님 나라에서 전능하신 분으로 혼자 계시고
나는 나의 세계에서 하느님 개의치 않고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큰 아들은 비록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늦게라도 실천을 합니다.
작은 아들은 선선히 하겠다고 했지만 실천하지 않습니다.
작은 아들은 애초부터 아버지의 명을 건성으로 들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발톱의 때만큼도 중요시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도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고민, 고민하다가 아주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상대는 아주 쉽게 ‘알았어, 알았어!’ 하더니
나중에 보니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
고민, 고민하다가 아주 어렵게 충고를 했는데
상대는 금방 ‘충고해주어서 고맙다’고 하더니
나중에 보니 전혀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 행동을 하는 경우.
이 경우 차라리 불쾌해하거나 반박을 한 경우보다 더 나쁩니다.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나를 성찰해봅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듣는 것으로 그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씀의 응답을 하고 있음을.
하느님은 계시지만
주님으로 계시는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