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영어로는
<Feast of the Transfiguration of the Lord>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축일의 의미를 묵상하다가
주님의 변모를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Transformation>이라고 하지 않고
<Transfiguration>이라고 했을까 말입니다.
Transfiguration이 겉모습의 변화라면
Transformation은 속모습이나 존재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변했다면 그저 겉모습이 변한 것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저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 겉모습이 아니라 존재가 바뀌어야 하겠지요.
글라라는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Through contemplation, transform your entire being
into the image of the Godhead itself”라고 쓰고 있고,
이는 관상을 통하여 우리 전존재를 하느님 모습으로 바꾸라는 말씀인데
사실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 관상의 궁극적인 바람은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존재적으로 바뀌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존재적인 변모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바람직하지만
주님은 이런 변모를 하실 필요가 없고 하셔도 아니 되는 것이겠지요.
왜냐면 주님께서는 본질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필리비서의 그리스도 찬가는 이렇게 노래하지요.
“그분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야말로 신인神人이시지요.
예수는 철저히 인간이시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히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고 해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존재적인 변화를 하실 필요는 없으시고,
변모를 하신다면 겉모습이 변화를 하시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겉모습이 변하시는 이유도 우리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주님의 모습으로 존재적인 변화를 하라고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e of God, imago Dei)이잖아요?
그러므로 하느님의 모상(image of God)인 우리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당연지사이면서도 희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변모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앞서 보았듯이 글라라는 관상을 통해 그리 하라는데
관상을 하기에 앞서 먼저 이렇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대의 정신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Place your mind before the mirror of eternity.
그대의 영혼을 영광의 광채 앞에 두십시오.
Place yoru soul in the brilliance of glory.
그대의 마음을 하느님 본질의 형상 안에 두십시오.
Place your heart in the figure of the divine substance.
이렇게 우리의 정신과 영혼과 마음을 하느님 앞에 두고
하느님을 관상할 때 우리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